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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story

구세군복(제복)에 관하여 - 함석헌

by 초코우유 ∽ blog 2015. 6. 9.

구세군 제복에 대한 이야기


김소인 사관(은퇴)


1960년대 후반이었다. 그 시절, 서울중구 정동 소재 구세군사관학교에선 연중 한두 차례쯤은 기독교계 명문대학 교수 아니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뛰어난 지도층 명사를 초빙하여 강연회를 개최하고는 했다. 시내 각 성업요로 일선서 땀 흘려 헌신 그리고 봉사하는 모든 사관 또한 자의청강대상이었다. 그 무렵, 사관학교장은 권경찬(權慶燦 1903 - 1985) 정령보, 교감으로선 김석태(金錫泰) 참령이었다. 차후, 김석태 참령은 부장(副將) 승급과 동시 한국구세군 제17대 사령관직무에 선임되어 눈부시고도 끈덕진 활약을 두루 펼쳤다. 무릇, 저 두 분함께 한국 구세군청사(救世軍靑史)에 진폭 큰 발자취를 길이 남겼거니와, 실은 이미 벌써 일찍부터 누구든지 지극히 우러러 받든 인품대상임에랴. 


특히, 그 빛난 학사정책일환으로써, 우리나라 현대사의 대표적 사상가이며 민권운동가이던 함석헌(咸錫憲/1901 - 1989)선생을 강사로 모신 적이 있다. 이는, 참으로 지대한 결단에 의해서라 싶었다. 그만치 기상천외의 놀라운 조처였기 때문에서다. 한데, 그때 그 함석헌 선생은 강론중도에 잠깐 휴게시간 틈새를 활용하여 구세군제복과 관련지어 우스개 우화 한 토막을 남겼다. 곧, 구세군창건의 원초적 이념(idea)과 순결무구(純潔無垢) ‧ 아가페(agape) 그 정신을 똑바르게 챙겨준 대목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얘깃거리를 들은 지 하도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만큼 기억력을 자꾸 더듬게 됐었다. 그래도 함석헌 선생의 그 이야기에 내포된 중요골자와 진실맥락은 고대로 아로새겨 이 글줄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 점 십분 헤아리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그 언급내용. 


아주 심심산곡에 매우 날렵하고 몹시 사나운 한 마리의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 그 호랑이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울창한 숲속 너럭바위 그 위에서 한창 늘어지게 낮잠에 빠졌다. 그렇다보니, 아까부터 험상궂은 포수가 총구 가늠쇠를 겨누고 살금살금 몰래 다가오는 그 절체절명의 위급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당연했다. 


그도 더더욱 그럴밖에 없었던 처지란, 깊은 잠의 꿈을 통해 마냥 신나는 장면이 연속되어 즐겼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그 꿈엔, 멀쩡한 생시그대로이듯 자기가 여전히 어느 누구보다 가장 두려운 산중의 왕 노릇존재로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어흥!>하고 냅다 포효하면 여느 모든 짐승아치들은 일제히 공포분위기에 사로잡혀 바들바들 떨며 땅속 소굴본거지로 이내 숨어버리는 그런 광경에 쾌재를 느끼었다. 그러니까, 호랑이로선 그 통쾌감을 만끽하고 있던 참이다. 


한편, 포수는 잠시 망설이었다. 나쁜 예김이 들어서였다. 지금당장 총탄을 집중 퍼부으면 호랑이를 무난히 사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호랑이의 모피에 커다란 흠집이 여러 군데 생겨 상품가치가 하락할 터인즉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 염려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래 머무적댔었다. 그런데 드디어 전광석화처럼 언뜻 좋은 묘수가 뇌리를 스쳤다. 그 진기한 꾀는 다름이 아니었다. 현재 호랑이가 의식이 없을 그 정도로 잠이 들었으니만큼 매우 예리한 면도날로써 호랑이의 정면상판 이마에 열십자형을 긋자마자 재빨리 뒤꼬리를 단단히 검쥐고 궁둥이를 발길로 들입다 세게 걷어찬다는 그런 기발한 계책이었다. 


그 포수의 그 희한한 속셈대로라면 결과는 분명했다.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호랑이로선 느닷없이 당한 돌발 사태에 깜짝 놀란 나머지 무조건 앞쪽을 향해 곧장 줄행랑칠게 뻔하였다. 그렇다면 반동력 작용이 발생, 가죽만 고스란히 포수 손아귀에 남겨질 것은 너무도 확실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획기적 발상 그대로 적중되었다. 한데 그제부터 졸지에 알몸이 되어버린 호랑이의 신수는 거덜 났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 당당하던 위세와 풍채는 간데없고, 오히려 여느 숱한 짐승들로부터 놀림대상이 되었다. 온 산천초목 뒤흔들리도록 아무리 쩌렁쩌렁 목청 크게 고함지르고, 또 미치광이처럼 길길이 마구 날뛰어봤자 아무도 끔쩍거리지 않았던 것은 둘째 치고, 극도의 창피와 업신여김을 겪어내야만 했다. 


즉, 산속 짐승이란 짐승은 모조리 다 기어 나와선 온통 이상야릇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희룽대는가하면 심지어 장난까지 걸어왔던 것이다. 쑥대머리 멧돼지를 비롯하여 여우, 노루, 사슴, 너구리 하다못해 토끼마저 합세해서 <야, 넌 어디서 굴러먹든 놈이냐?>고 핀잔한다던지, <너 단단히 미쳤구먼, 괴상망측하게 벌거숭이에다 험한 인상 쓰며 공갈치는걸 보니까>라며 심한 면박과 함께 마구 조롱했다. 또, 매우 짓궂은 장난질도 쳤다. 


이제, 풍자적 우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함석헌 선생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역설하였다. 바로 구세군의 독특한 명분과 위상은 제복, 즉 유니폼(uniform)에 한몫 배여 있는 셈이니, 이를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하면 마치 모피 벗겨진 호랑이의 그 가련 막급 신세 꼴 닮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어 함석헌 선생은, 유독 구세군사관생도들에겐 이렇게 당부하는 것을 걀코 잊지 않았다. 비록 우화이긴 하지만, 호랑이가 깊은 잠 탓에 제 모피를 잃은 것 거울삼아라. 그리하여 언제나 늘 깨어 귀중한 제복을 제대로 건사할뿐더러 애용하는 습관을 길러라. 그 연후, 정식 사관에 임명되거든, 시대적 파수병의 그 빛난 사명과, 등대지기 그 의로운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해내라 누누이 일렀던 것이다. - 끝 -



출처: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http://www.gufot.ac.kr/korean/viewtopic.php?t=4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