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효, 구세군사관학교 강의록: 구세군 교리형성의 역사적 배경, 1984, http://cafe.naver.com/sabf/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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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효 사관 네이버 블로그 '구세군 혈화병사' http://cafe.naver.com/sa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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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교리형성의 역사적 배경
서론(Introduction)
이 글은 1984년 7월 2-5일간 구세군 사관학교에서 ‘구세군을 구세군답게’라는 주제로 한 여름 구세군 병사 수련회에 참석한 후 영문과 사회복지 시설사관으로 35년간 사역하면서 하사관들에게 구세군인은 그리스도의 정병이라는 것을 강의했던 것을 구세군사관학교에 재직하면서 구세군 사관학생을 위해 복음적이며 영적인 구세군교리 형성의 역사적 배경과 구세군교리 편람의 변천사를 재정리 한 것이다.
특히 구세군 교리가 형성되기까지의 역사를 단순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를 확인하는 단순한 교회사 연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세군이 118개 국가에서 동일한 구세군 교리가 현대정치, 사회,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국가에 멀티 풀하게 접목되어 갔는지를 신학, 철학, 역사학적인 관점을 추구하려 는데 있다. 세계 각국 백성의 정신과 역사에 구세군이 매우 역동적으로 사역하고 있으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윌리엄 부스의 선교사역은 1866-67년 사이에 동 런던 기독교 부흥협회(The East London Christian Revival Society)의 지도자로 수락하면서 동시에 동런던 기독교 부흥협회 교리(1866)를 수용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복음전도협회는 초 교파적 모임이었고, 신조는 성서였다. 윌리엄 부스의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윌리엄 부스는 자기와 연합하여 부흥사역에 협력하며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환영했다. 당시 윌리엄 부스의 생각은 어떤 새 종파를 조직하고 창설하거나, 기성교회와 분리된 어떤 새로운 교파(para church)를 세우려는 의도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단순히 교회와 관계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교회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구세군은 분명히 국제적인 조직체(international organization)로 118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메트 베줘(Mat Badger) 사관학생은 사회학적 맥락에서 구세군이 설립된 과정을 피터 워스레이(Peter Worsley)가 언급한 데로 단체가 설립되려면 청중(Audience)과 추종자(Following) 운동(Movement) 그리고 조직(Organization)이 있어야 하나의 단체(Institution)가 형성된다고 했듯이 구세군 창립과정도 비슷하다고 했다.
초기 구세군 사역자들은 사회봉사 사업과 급진주의적인 입장에서 부흥전도 설교로 시작한 것이다. 부스의 전도전략은 도시빈민을 향하여 공략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 공민권도 박탈당하고, 사회적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역에 사는 극빈자들이었다. 어느 날 부스는 런던 동부의 빈민가의 천막집회를 인도해 달라는 초청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부스는 그곳에 가서 집회를 인도했다. 집회를 인도하는(experience) 동안 부스는 전에는 느껴보지(feelings) 못했던 그들의 ‘영혼이 불쌍하다’고 공감을(sympathy) 갖게 되었고, 이곳이 바로 자신의 사역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부스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 캐서린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나의 운명을 이제 알았소. 이 사람들이야 말로 내가 여러 해 동안 구원하고자 갈망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요. 내가 오늘 밤 난로가 활활 타오르는 화려한 술집 문을 지날 때 내 귓전에 스치고 지나가는 음성이 있었소. ‘네가 어디에서 이와 같은 이교도들을 만날 수 있으며, 또 네가 어디에서 이렇게 간절하게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을 만날 수 있느냐?’ 나는 즉시 마음속으로 나 자신과 당신, 그리고 우리 아이들까지도 이 위대한 사역에 헌신하기로 작정했소.” 이처럼 남편의 감격적이며(emotion) 일방적으로 선언하자 캐서린은 당황했다. 런던 동부의 빈민가에 있는 영혼들을 향한 연민으로(sympathy) 정신이 집중되어 완전히 눈이 멀어 그들을 상대로 사역을 한다는 것은 아무런 생활의 보장을 받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좋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우리는 지금껏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께 맡겨왔으니까요.”라고 대답을 했다. 마치 테러사 수녀(Blessed Moterh Teresa 1910-1997)가 의료 지식을 습득한 후 홀로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버려진 아이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sympathy)으로 종신 사역을 감당했던 것처럼 윌리엄 부스는 자신을 ‘나는 인생의 하수구에 그물을 치고 청소하는 도덕적 청소부’라고 묘사하며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의 영혼을 구원 길로 인도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류계급 가운데서도 최 하류 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얻기를 소원합니다.”라고 했다.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매일 사람들이 아사로 인해 죽어나갔고, 유대인 강제 거주 구역이며 종교적 핍박을 피해 프랑스에서 16-17세기에 피난 온 위그노(Huguenots)파들이 생활하는 지역을 자슨 데비에 킬데아(Jason Davies Kildea) 부위는 구세군 선교의 대상자들은 세잎 크로바와 같은 변두리 인생(Social Marginalisation)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어떤 종교가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지녔다고 선언하면서도 인간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경제 상태나 인간의 영혼을 불구로 만드는 사회적 조건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무미건조한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아와 같은 종교야 말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즐기는 견해 데로 민중의 아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는 그의 말대로 지상의 것과 하늘의 것을 동시에 취급하며 시간과 영원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종교는 위로 향하는 수직선상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옆으로 향한 수평선상에서도 작용해야 한다. 즉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인간을 위로 있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과 인간과 또 다른 인간과의 깊은 관계를 만들어 주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기독교의 복음이 두 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한다. 즉 하나는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며, 또 하나는 인간이 처한 주변의 상황(social evil)을 변화시켜 그 인간의 영혼에 하나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한 마디로 기독교 복음은 구원의 능력(소금의 맛)과 사회변혁의 기능을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이 후자의 경우가 기독교가 이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책임(짠 맛)인 것이다.(마태복음 5:13)
윌리엄 부스는 선교를 하는 동안 신약교회의 전도적 사명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소외된 동부 런던 빈민들에게 무관심한 당시 교회들을 향하여 대응책을 세우기를 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선교회는 가난과 질병, 굶주림과 무지와 사회악 등으로 고통을 받고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부스는 교회가 빈민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가 아닌 가난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 공동체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진정한 기독교(aggressive, active Christianity)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리처드 니이버(Richard Niebuhr, 1894-1962)가 말하는 복음 선교적 사회주의(Evangelical Socialism)에 비전을 둔 캐서린은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정신에 입각하여 강력히 주장했고, 부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구원(Salvation in the Slums)에 생애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더불어 공산당 선언을 확립한 경제학자인 프레더릭 엥겔스(Frederick Engels, 1820-1895)는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의 영문판(1892) 서론에서 당시의 초기 구세군이 1)초대교회의 전도활동을 부활시켜 2)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을 호소하고, 3)종교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대항하며, 4)초대 기독교 계급의 저항 주의적 성격의 공동체를 육성하려고 한다. 라고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언급했다. 그러나 프레더릭 카우스(Frederick Coutts, 1963-1969)대장은 엥겔스의 구세군에 대한 종교적이며 사회과학적인 분석에 대하여 첫째 내용은 옳은 표현이고, 둘째 내용은 반쯤 옳은 표현이며, 셋째와 넷째 내용은 전혀 틀린 내용이라고 비판하고 구세군의 입장을 바로잡아 주었다. 사실 윌리엄 부스는 당시 노동자 운동인 인민 헌장 운동(The Charter)에 서명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부스는 노딩햄 웨슬리 예배당(Nottingham Wesleyan Chapel)에서 개심한 후 강렬한 느낌을 체험한 후 새로운 배출구를 찾게 되었다. 부스가 1908년 4월 스테드(W. T. Stead)와 사회주의(Socialism)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할 때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구세 사회주의자(Salvation Socialist)로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구세 사회주의자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Fabian Socialist)와는 다른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지요.”라고 한 내용이 매일 신문(The Daily Chronicle)에 기재되었다. 당시 역사가들은 부스가 이끄는 구세군이 사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부스 스스로 경제주의자나, 사회학자라고 주장한 적은 없고, 처음부터 나중까지 복음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오직 영혼 구원(full salvation)을 위해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전통적인 교회의 기능을 갱신해 진지하게 영혼에 대한 관심(concern for the souls of the people)을 다시 찾게 하려는 영적 개혁운동을 벌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보편적 교회의 복음 선교 기능을 넘어서 요즘에 재발견된 선교의 개념인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되어 갔다. 윌리엄 부스는 화육의 복음전도를 위한 사회사업(Evangelical Social Work) 즉 세상 속에서 죄악과 빈곤과 나태로 인한 잃은 양을 찾아 권하고, 그들이 세상 속에서 처해있는 육체적, 물질적 난관을 극복케 하여 인간화 시켜 영혼을 구원시키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구세군 최초의 교리는 선교회가 창설된 이래 개심자 가운데 애주가들이 사관된 자들이 많았고, 타 교파에 출석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선교회에 머물면서 빈민을 위한 복음 선교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하여 사관으로 임관된 분들과 신조를 같이 하고 협동하기 위해서 교리가 필요했다. 부스는 1867년차 보고에서 “우리는 어떤 교파에 편파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교리는 성경에 있으며,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신앙과 실천에 표준으로 삼는 신자들과 심령 부흥사업(revival work)에 전심하는 동역자들(co-workers)을 중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개심자들을 양육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안내 할 문서(document)가 필요하게 되어 1868년 7교리(Bond Agreement)를 제정하게 되었다.
1875년 선교회의 헌장엔 1870년 1차 총회에서 채택된 7교리와 선교회의 규칙(Rule of the Church Mission)이 첨부되었다. 7교리가 11교리로 확대되었다. 제2조가 둘로 나누어져 제2조와 제3조로 되었고 제8조, 제9조 그리고 10조를 추가되었다. 고든 마이클(Gordon Michael) 정령은 선교회의 규칙은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1873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나, 라벝 센들(Robert Sandall) 정령은 1874년 회의에서 채택된 선교회 규칙을 1875년 확인 후 1876년 11교리를 채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제3차 세계 구세군인 대회가 1904년 런던에서 개최될 때 윌리엄 부스는 49개 군국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모는 회원들로부터 1878년 의정서에 기록된 구세군 명칭과 구세군 교리에 대하여 찬성으로 재확인했다. 그리고 구세군 교리는 바꿀 수 없다. 구세군이 존재하는 한 이 교리는 구세군의 헌장이라고 했다라고 구세군 10대 대장 크라랜스 와이즈맨(Clarence Wiseman, 1974-1977)은 회고했다. 1980년 구세군 행동 강령(Salvation Army Act)이 추가되기 전까지 1878년 구세군 창립 문서에 11교리가 채택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세계 118개 국가의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구세군병사의 신앙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있다.
구세군의 문서 출판의 목적이 구세군 자체의 목적과 동일하게 구원받아 성화된 남녀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것인 것처럼 구세군 교리형성의 역사적 발전의 배경을 연구하는 목적은 구세군 병사에게 구원의 도리를 묻는 자에게 성서 신학적이며 교회사적으로 이해하여 자신 있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유능한 구령자(soul winner)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을 완전구원(Full Salvation)의 길로 인도하는데 있다.(벧전 3:15, 요 1:19) 구령을 위한 게릴라 요원인 구세군 병사가 제2의 축복인 성결을 체험토록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의 정체성(identity)을 재확립하고(딛 1:1-4, 딤후 2:1) 다른 복음을 예방하고 어떤 종교 철학적 학설로 인하여 구세군이 분리되는 일어 없이 결속하려는데 있다. 특히 디트리히 본훼퍼(Deitrich Bonhoefer, 1906-1945)가 "제자직 없는 기독교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Christianity without discipleship is always Christianity without Christ)"라고 했듯이 구세군 병사가 만인제사장직분을 충성된 사람에게 필수적인 학습내용을 지혜롭게 전달하여 그들도 다른 사람에게 구세군 병사의 신학(Soldierships Theology)훈련을 지속하려는데 있다.(엡 6:10-17; 딤전 6:12; 딤후 2:2-4)
2002년 구세군 제17대 대장으로 선출된 후 존 라아슨(John Larsson, 2002-2006)은 임기동안 구세군 선교의 삼중 본질인 영혼 구원(to save souls), 성도 육성(to grow saints), 고난당하는 인류를 섬기는(to serve suffering humanity) 사역을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이 위대한 총체적인 사역(the holistic ministry)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구세군 병사가 믿는 구원의 도리를 병사들에게 가르쳐 사람을 살리는 유능한 구령자(soul winner)가 되도록 하는데 있다. 그리스도의 구령을 위한 게릴라 요원들의 성결 생활에 도움을 주려는데 있다. 레일톤(George Scott Railton, 1849-1913)부장이 성결의 은총을 누리지 않고서는 구세군 사관직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듯이 구세군은 성결의 체험과 성결한 삶의 실천을 강조했다. 특히 존 라아슨(John Lasson) 대장은 이 시대에 구세군에 맡겨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힘을 한곳으로(A force) 구축해야 한다. 구세군 선교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아 개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 영문(Our Corps)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자. 둘째로 우리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인 교회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보여주자. 셋째로 통합선교(integrated mission)를 통해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모든 사람(whole person)에게 온전한 선교(whole mission)를 하도록 주력하자. 넷째로 지역사회에 있는 각계각층을 폭 넓게 접근할 수 있는 친절한 자질을 발휘하자. 다섯째로 소외당하고 있는 변두리 인생을 위해 구세군의 특수선교(Army's special mission)에 주력하자고 호소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까지 온 교회(the whole church)가 온 세상(the whole world)에 온 복음(the whole gospel)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윌리엄 부스는 그의 생애 83년 4개월 10일(1829.4.10-1912.8.20)동안 5만 마일을 선교여행을 했고, 60년간 60,000번 생명의 말씀을 선포했으며, 미국과 캐나다 선교여행은 5회, 호주와 아프리카 선교여행은 3회, 인도 선교여행은 2회 일본 선교여행은 1회를 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구세군 교리는 하나님의 본질과 목적, 인간의 행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교훈을 연구하여 구세군인의 긍지를 갖도록 하며 구세군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돕는데 있다. 구세군 교리는 우리가 이러한 신앙의 기초와 선교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더불어 사는 삶과 또한 우리가 행하는 구속적이면서 사랑이 넘치는 사업을 위하여 이 신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세군 교리편람을 의도적으로 간명하게 만들었는데 그 목적은 전 세계 구세군 병사들이 함께 나누는 신앙에 대한 증언(Testament)들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세상이 구원을 위해 수세기를 거치면서 이루어 오신 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업의 일부분으로 모든 영원으로부터 사랑으로 태어나 깨어진 인간성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인류가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구세군을 세우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리의 말씀을 지켜야한다. 그래야만 바른 교훈으로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책망할 수 있습니다.”라는 디도서 1장 9절의 말씀을 믿는다. 또한 “내게 들은 것을 많은 증인들 앞에서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겨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시오.”라는 디모데 후서 2장 2절 말씀도 믿는다.
구세군 교리는 왜, 자신이 구세군 사관으로서 목회를 하고 있는지? 왜, 성도가 구세군 좋은 병사로 입대해야 하는가? 이해케 한다. 구세군 교리는 구세군이 구세군 되며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구세군 병사 자신이 진리의 말씀을 준수하도록 하며 순 복음(pure gospel)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책망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제자들의 지도력 훈련을 시키데 필요하다.
구세군 교리는 신앙고백이며 구세군 병사들이 평생 선포해야할 내용이므로 구세군 병사로 입대하려면 병사입대식 때 구세군 병사 서약서에 서명 날인하게 되고 이 11개의 신조를 수락해야 된다. 또 구세군 교리는 구세군 정신으로 훈련된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 담임사관과 훌륭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자를 비롯하여 구도자와 구성자를 위한 자비석 상담자, 심방 사역자들을 훌륭한 트레이너가 되도록 함양시키려는데 필요 불가결한 기본적 요소다. 구세군인들은 복잡하고 공허한 이론 보다 단순하게 인간의 실존적 지식을 얻고 인생의 방향을 올바로 파악케 하여 인간이 범죄 한 결과로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진 상태를 회복하는 길을 보여 주는 일이 최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구세군 군가(The Salvation Army Song Book)에 구원과 성결에 관한 주제로 된 군가가 181곡이나 되며,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라는 주제가 177곡이나 되는 점을 통해 구세군 신학사상을 헤아릴 수 있다.
구세군의 교리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확신과 구원받은 병사들에게는 성결의 체험을 갖도록 가르쳐 주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어려운 문제를 도우며 성별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구세군에서는 퀘이커처럼 지나친 형식과 의식을 반대하며 하나님의 영은 의식이나 물질적 수단 없이도 직접 사람의 영혼과 교통할 수 있도록 하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구세군의 영적 무기인 사랑과 겸손한 마음으로 전도한다. 구세군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회개하고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실천적 교리를 강조한다. 구세군의 어느 대장은 그의 재임 기간 공적 예배 폐회시간에 아무 의미 없이 회중 전체가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폐회 하는 일을 금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구세군 교리는 순전히 복음 전도 신학적 의미에서 죄로부터 개인적인 구원(personal salvation from sin)과 악으로부터 사회구원(social salvation from evil)을 위한 사회정의와 섬김을 강조한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온전한 성결(wholly sanctified) 생활을 강조하여 총체주의 신학(Holistic Theology)을 지향하고 있다. 오늘날 ‘나는 신학자가 아니고 단지 평신도에 불과해’, ‘나는 신학자가 아니고 다니 목회자 일 뿐이야’라고 무관심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른다.
진정한 기독교의 생존은 기독교인들이 전반적으로 신학 쟁점들과 적극적으로 씨름하느냐? 않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신학은 신학자에게 맡기고 라는 말은 오늘의 구세군 병사에겐 무의미하다. 교단분열과 교단 전통에 대한 무관심, 성도의 신념에 대한 신앙의 반성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사고의 상실은 기독교 쇠퇴의 비결이 될 것이다. 참된 신학은 서민대중들이 그것에 의해서 살아가는 그런 신학이다. Charles Ryrie는 ‘신학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신학자가 되어할 필요가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정도차이는 있어도 신학자다. 문제는 구세군 병사들이 아마추어냐 전문적인 신학자냐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무지와 불성실한(ignorant or sloppy) 신학자들이다.’고 한 내용에 공감한다. 신학은 매일 실천해야 하는 기독교의 사고이며, 사관과 병사라는 직책으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평신도(laity, laos)란 하나님의 백성(people of God)이라는 라오스라는 신분적 정체성 즉 하나님의 백성은 만인 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으로 사관과 병사가 함께 섬기는 자(Servant Together)라는 가정(supposition)을 비판하고, 병사들이 구세군의 유산들을 비판 검토하고 실천적 기독교(Aggressive Christianity)의 전통을 재확인하게 되므로 구세군 병사들이 세속사회에서 활동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하나님, 복음, 성서, 믿음, 미래, 성결한 삶 등 각 가지 필요한 관점(perspective)을 자신 있게 전하도록 교회 전체가 나서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얼 라빈슨(Earl Robinson)의 『구세군 교리사(The History of Salvation Army Doctrine, 2000년)』와 고든 마이클(Gordon Micheal)의 『구세군인의 교리(Salvationist Doctrines, 1973)』 그리고 존 카우스(John J. Coutts) 사관의 『구세군 교리의 배경연구(This We Believe: A Study of the Background and Meaning of Salvation Army Doctrines, 1976년)』같은 문헌을 기초 자료로 삼고 첫째로 구세군교리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제설, 둘째로 구세군 창립자의 다양한 신앙세계, 셋째로 구세군교리 형성의 태동기, 넷째로 구세군교리 형성의 성장기 그리고, 구세군 교리편람의 변천을 살펴보도록 했다.
구세군 교리형성의 배경에 관해 연구하면서 가시적인 고문헌이나 무형적 유물이 미흡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그러나 궁금한 부분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독자에게 보다 충실히 이 과제를 연구하고 풀어가도록 격려해주고 싶고 동시에 역사적 자료가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자료는 구세군의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지만, 한국 구세군 사관학생의 학습과 훈련을 위해 준비한 자료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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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세군 교리는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에 관한 지식을 갖게 하며, 신자들에게 성결의 체험을 가르쳐 주고 있다.
2. 구세군 교리는 영적이다. 지나친 의식을 반대한다. 하나님의 영은 어떤 의식이나 물질적 수단 없이도 직접 사람의 영혼과 교통할 수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 상이의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한 분이시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회개와 신앙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곧 구원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3. General, The Salvation Army Handbook of Doctrine(London: Salvation Army,1969) , p.4.
4. Robert Sandall, The History of the Salvation Army. Vol. I. 1865-1878 (London: Nelson, 1947), p.72. 동 런던 부흥 협회(The East London revival Society)시절은 동 런던 기독교 전호협회(The East London Christian Evangelisation Society)가 동 런던 기독교 선교회(The East London Christian Mission)로 명칭이 변경되는 시기다.
5. Earl Robinson, "The History of Salvation Army Doctrine" Word & Deed, Vol. II, No.2, (Alexandria: Salvation Army, 2000), p.33
6. http://www.geocities.com/hugenoteblad/hist-hug.htm
7. H. Richard Niebuhr,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New York : Henry Holt and Co, 1929), p.75.
8. Frank Baker, "Wesley's Principals for Social Action", Good News Magazine, January/ February 1985
http://www.messiah.edu/whwc/gallery.htm
9. Frederick Engels, Socialism: Utopia and Scientific(New York: International Press, 1962), p.75.
http://csf.colorado.edu/psn/marx/Archive/1880-SUS/
10. 점전적 사회주의(Fabian Socialism)는 1883년 10월 24일 영국에서 Edith Nesbit와 Hubert Bland가 사회주의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협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다음해는 퀘이커 교도인 Edward Pease와 모임을 함께하게 되며, Havelock Ellis, 또 Frank Podmore와도 관계를 맺는다.
11. http://www.spartacus.schoolnet.co.uk/Pfabian.htm
12. Aarch R. Wiggins, The History of the Salvation Army Vol. V. 1904-1914(London: Nelson, 1968), p.292.
13. Raymond Postagate, The Common People(London: Methuen, 1961).
14. Frederick Coutts, Bread for My Neighbour(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78), p.20.
15. Minnie Lindsay Carpenter, William Booth( London: The Epworth Press, 1942), p.49 .
16. Frederick Coutts, No Discharge In This War(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74), p.102.
17. William Booth, In Darkest England and The Way Out(London: Charles Knight & Co. LTD, 1890). p.17.
18. The Salvation Army, "Chapter 5, Section 1-1 The Doctrines of The Salvation Army", Orders and Regulations for Soldiers of the Salvation Army(www.salvationist.org/orsold.nsf)
19. General. op.cit., p.2.
20. Sandall, op.cit., p.263.
21. Gordon Michael, "Salvationist Doctrines," The Officer, Vol.24 No.5(London: Salvation Army, 1973), p. 236.
22. Sandall, op.cit., p.281.
23. 1980년 구세군 행동강령은 구세군이 행정과 관습에 차이가 있더라도 완전한 기독교의 일부분이다. 구세군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주류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강조하는 신앙조항들 이다. 구세군 교리의 목적은 교육, 기독교의 진흥과 빈곤을 제거하여 온 인류가 생활하는 지역공동체와 사회에 유익을 끼치기 위함이다.
24. John Larsson, "Renewal!" The Officer, November / December 2002(London: Salvation Army, 2002), pp.4-5.
25. Catherine Booth, Aggressive Christianity(Toronto: William Briggs, 1883), pp.35-41
26. 구세군대한본영, 구세군 예식문(서울: 성일전산, 1992), pp.9-10
27. Shaw Clifton, Who are These Salvationist? an Analysis for the 21st Century(Alexandria: Crest Books, 1999), p.120.
28. Fidelsi, Red Cross Knights of The Salvation Army(Toronto: Williamson, 1884), p.5
29. 구세군의 실천적 교리 : ① 온 인류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다. ② 그리스도의 속죄는 만인을 위한 것이다. ③ 회심은 성령에 의한 영적 변화이다. ④ 죄에서 구원받은 자는 성결한 삶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30. Roger J. Green, War on Two Fronts: The Redemptive Theology of William Booth(Atlanta: The Salvation Army,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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