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분없는 카테고리

부모와 자녀의 자존감 ‘비례 공식’ 아시나요

by 초코우유 ∽ blog 2014. 9. 25.

부모와 자녀의 자존감 ‘비례 공식’ 아시나요


등록 : 2014.09.01 20:24

자녀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존감을 먼저 살펴야 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함께하는 교육] 부모의 자존감


자녀의 자존감에 관심 있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의 자존감’을 문패로 내건 책도 많이 나와 있고 관련 캠프도 성행한다. 그런데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부모의 자존감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걸 아는 부모는 많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 두 딸을 둔 학부모 박아무개(49)씨는 지난해 11월 둘째 딸의 학교에서 ‘자녀가 친구들을 심하게 괴롭힌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늘 엄마의 기대를 채워주던 얌전한 딸이었다. 박씨는 당황해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딸은 “걔는 공부도 못 하는데 내가 왜 혼이 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꼬박 사흘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놀란 박씨는 큰딸에게 하소연을 했다. 한데 큰딸은 “동생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박씨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3월 한 상담센터를 찾아 가족상담을 받았다.

박씨의 문제는 딸들의 성적에 너무 강하게 집착한다는 데 있었다. 큰딸은 학교는 물론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수재였다. 둘째 딸도 학교에서 전교 10등권에 속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박씨는 딸들이 어릴 때부터 “학생일 때는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을 잘 가야 성공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하루 종일 딸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집을 나가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박씨는 “딸들이 실망한 엄마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딸들의 생각은 달랐다. 큰딸 유아무개(17)양은 “시험 전날에는 내 성적 때문에 엄마가 가출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시험 전날, 시험을 치른 다음날 엄마의 심리상태를 걱정하다 시험을 망친 적도 있다. 시험을 보다가도 헷갈리는 문제가 나오면 엄마부터 생각났다.”

둘째 딸 유아무개(15)양은 “성적에만 관심 있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며 “지금보다 공부를 못했다면, 내가 먼저 집을 나갔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의 진학과 성취를 통한

대리만족이 큰 부모일수록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아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한 아이

자존감 발달에 장애 일으켜

자신과 자녀를 떼내 돌아보고

신뢰 형성해 자존감 키워줘야

자신의 자존감을 딸로부터 채워

상담사는 “엄마는 부족한 자신의 자존감을 딸들로부터 채웠고, 딸들은 그런 엄마를 보살피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박씨는 자존감 결핍 상태였다. 박씨도 학창 시절에는 수재였다. 하지만 ‘딸인데 뭐하러 서울까지 대학을 보내냐’는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지방 대학에 진학했다. 고교 동창들이 ‘큰 회사에 취직하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잘산다’는 소식을 들으면 속상했다. 두 딸은 꼭 좋은 대학에 보내 똑똑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게 할 것이라 다짐했다.

박씨의 둘째 딸 유양은 가출한 당일을 회상하며 “‘엄마, 그만해. 싫어’라고 처음 말했을 때가 그때였다”고 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지만 한편으로는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이게 자유로운 느낌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 뒤 박씨의 가족은 매주 저녁식사 시간에 ‘일주일에 한번 각자 인생에서 꼭 하고 싶은 10가지’, ‘가족과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 찾아보기’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씨는 “가족 모두 각자의 자존감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계가 좋아졌다”며 기뻐했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뜻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박씨의 경우, ‘자존감 낮은 부모’의 전형이다. 박씨처럼 자녀의 삶을 자신의 이상대로 설계하려는 부모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다. 자녀가 부모의 뜻을 거역했을 때, 배신감과 우울을 느끼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자존감 낮은 부모 밑에서 부모의 삶을 대신 살게 되는 자녀는 불행하다. 타인(부모)의 자존감을 채우느라 자신의 자존감은 내버려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존감 낮은 부모 아래 자란 자녀는 자존감이 낮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동행심리상담센터의 공진수 센터장은 “자존감을 키워줘야 하는 아동·청소년기에 부모가 자녀의 자존감을 채워주지 않는 것은 착취”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돈은 입금되지 않는데 출금만 계속되는 ‘마이너스 통장’과 같다”고 비유했다.

1차 자존감은 유아기때 형성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가 박씨처럼 자녀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등의 소식을 듣고서야 자신을 돌아본다는 점이다. 조금 더 일찍 점검해 보기 위해서는 자녀와 자신을 분리해 생각해보는 연습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대학에 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줄 것을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는 뜻이다.

자존감에도 단계가 있다. 경인교대 지식자원개발센터에서 자존감 향상 연수를 진행하는 남서울대 부설 한국행동분석연구소장 김은실 교수는 “자존감은 자아, 1차 자존감, 2차 자존감 등 세 가지로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자아’(ego)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라면 1차 자존감은 0~3살 영·유아기에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핵심 자존감이다. 핵심 자존감은 ‘타인이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는 믿음’과 관련이 깊다. 2차 자존감은 그 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다. 각종 성취 경험 등이 쌓이면서 ‘나는 어떤 일이든 간에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2차 자존감으로 발달한다.

1, 2차 자존감 둘 다 중요하다. 김 교수는 “1차 자존감에 비해 2차 자존감이 높으면 실패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누구나 한번쯤 겪는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은 1차 자존감에서 나온다. 부모와의 애정관계를 통해 스스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아이는 시련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반대로 1차 자존감이 잘 형성되어 있더라도 2차 자존감을 발전시킬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1차 자존감도 흔들린다.

김 교수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아무리 사랑해줘도 ‘왜 늘 실패만 하는 나한테 애정을 주는 걸까?’라고 타인의 애정에 의심을 품는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자녀가 있는 부모가 1차 자존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영·유아기가 지났어도 핵심(1차) 자존감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따뜻한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끈끈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1차 자존감을 늦게라도 채우는 게 중요한 까닭이다.

자존감이 낮은 부모가 자신의 자존감은 물론 자녀의 자존감까지 키워주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여유가 된다면 부모가 직접 상담을 공부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아동교육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공 센터장은 “부모들이 심리상담을 배우다가 ‘진작에 알았으면 애들한테 더 잘했을 텐데…’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심리를 배우고 싶어 왔는데 내 청소년기도 돌아보게 됐다’, ‘내 어릴 적 상처를 들여다보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청소년 상담을 공부하러 왔다가 자녀는 물론 자신의 청소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치유하지 못한 자신을 품고, 이해하게 된다.”

사춘기 반항은 자연스런 현상

부모들은 갈등이 없는 부모-자녀 관계를 안정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부모와 싸우지 않는 자녀의 자존감은 낮을 확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사춘기 청소년이 부모의 의견에 반항하는 것은 자녀의 자존감이 그만큼 발달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뜻이다. 이 시기 부모가 무조건 “엄마, 아빠 말 들어. 우리 말이 맞다”며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존감 발달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공 센터장은 “이럴 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스스로 자존감을 세우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 독립해야 할 시기에 뒤늦게 정체성 혼란을 겪거나, 이상 심리상태로 빠지기도 한다”며 “대학 입학 뒤 게임 중독 등으로 방황하는 대학생, 평소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학생들이 그런 사례”라고 밝혔다.

김은실 교수는 “부모-자녀 관계에서 부모가 자존감 결핍 문제를 인지했고,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자신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의 마음속 상처 등이 자녀의 자존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대화법’ 등 기술적인 부모교육은 자존감이 낮은 부모일수록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단편적인 대화 기술만 익혀서 아이에게 ‘너는 특별한 아이란다’라는 식의 말을 반복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자녀는 부모의 기계적인 말 한마디보다 평소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평소 부모의 태도에서 그걸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