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124년 주기 가뭄 둘이 겹쳐
올핸 몸풀기 수준, 2015년이 진짜"
한반도 대가뭄 시작인가 … 부경대 변희룡 교수의 경고
끝 모를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를 제외하고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 두 달 가까이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서울은 5월 1일부터 지금까지 강수량이 10.6㎜로 예년 평균의 6% 수준에 그치고 있다. 농작물의 생육이 나빠져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충남과 전북 서해안 지역은 식수난까지 겪고 있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전선은 현재 동중국해에서 일본 규슈 남해안에 걸쳐 있으며 일시적으로 25일께 북상해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방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가뭄을 해소할 본격적인 장마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번 가뭄은 한반도에 버티고 있는 고기압이 원인이다. 비를 가진 기압골이 우리나라를 통과하지 못하고 북쪽으론 만주 지역, 남쪽으론 제주도 남쪽 해상을 지나면서 비다운 비가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기상청은 장마전선이 북상하더라도 올여름 강수량이 예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대기학자인 부경대 변희룡(62) 교수가 가뭄주기설을 강조해 눈길을 끈다. 22일 기자와 만난 변 교수는 “이번 가뭄은 2015년의 대가뭄을 앞둔 ‘몸풀기’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올해 몸풀기에 들어간 가뭄이 2015년 본격 상승곡선을 긋기 시작해 2025년 초대가뭄으로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 기간 동안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주도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경고도 했다.
1977년도 대가뭄 중심에 들었던 해
그에 따르면 한반도는 1884년부터 1910년까지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이 기간 연평균 강수량이 878.8㎜로, 지난 30년간 연평균 강수량(1384.7㎜)의 절반 정도였다. 특히 1901년 대가뭄은
변 교수팀이 가뭄주기설을 강조하는 것은 1777년부터 2006년까지 강우량을 조사한 결과다. 그 이전 자료는 실록이나 각종 고문헌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 결과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한반도에서 6년 주기 가뭄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1988년 충남, 94년 전남, 2001년 경기도, 2006년 전남과 경남에서 각각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12년 주기 가뭄은 여름철 장마가 짧거나 아예 생기지 않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1982년과 94년에는 장마 없이 바로 무더운 여름으로 돌입했다.
38년과 124년 주기 가뭄은 지속기간이 길고 피해 규모가 전국적이란 특징이 있다고 한다. 38년 주기 가뭄은 지속 기간이 3~10년, 124년 주기 가뭄은 25~29년에 이른다. 1884년 시작된 대가뭄의 정점인 1901년은 38년과 124년 주기 가뭄이 겹쳐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그는 “
1936년 발표된 김정한의 ‘사하촌’은 긴 가뭄으로 황폐해진 농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모를 낸 후 비 같은 비 한 방울 구경 못한 무서운 가뭄에 시달려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졌던 고목 잎이 볼 모양 없이 배배 틀려서 잘못하면 돌배나무로 알려질 판이다. 그래도 그것이 구십도가 넘게 쪄 내리는 팔월의 태양을 가리어, 누더기 같으나마 밑둥치에 제법 넓은 그늘을 지웠다. (중략) “논은 어떻게 돼 가니?” “어떻게라니요. 인젠 다 틀렸어요. 풀래야 풀 물도 없고, 병아리 오줌만 한 봇물도 중들이 죄다 가로막아 넣고, 제에기….”
그런데 지금 38년 주기 가뭄과 124년 주기 가뭄 등 두 개의 긴 주기 가뭄이 중첩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1901년과 39년, 77년은 38년 주기 대가뭄의 중심에 들었던 해다. 1977년 이후 38년 주기 대가뭄은 2015년이 되는 셈이다. 대가뭄의 시작은 중심보다 2~3년 앞서 시작되니까 올해 가뭄이 시작되는 걸로 봐야 한다는 게 변 교수의 설명이다.
가뭄주기의 원인에 대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없다. 주로 과거 가뭄 기록을 분석한 결과에 기초하고 있다. 태양흑점주기(약 11년)가 6년의 두 배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를 지적한 외국 논문이 많이 있지만 한반도와의 관련성은 찾지 못했다는 게 변 교수의 말이다. 오히려 한반도에서는 정확히 6년 주기로 가뭄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앞으로 상당히 긴 기간 큰 가뭄이 찾아올 것이므로 크고 작은 댐을 많이 만들고 수로도 정비해 갈수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수 예보 위주로 돼 있는 기상청 예보 시스템도 가뭄을 포함한 시스템으로 개편하고 가뭄대책에 대한 연구와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4대 강이 해갈 도움” “있으나마나” 엇갈려
4대 강 공사가 이번 가뭄 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견해와 ‘아니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변 교수는 가뭄 해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4대 강 주변엔 가뭄 피해가 거의 없다. 지금 4대 강은 물이 가득 차 있다. 물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용수로를 연결해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4대 강 사업이 전국의 모든 가뭄을 해결할 수는 없어도 전 국토의 40~50% 지역엔 혜택이 돌아간다”는 국토부 관계자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가뭄 뒤 닥칠 것으로 보이는 홍수 피해도 4대 강이 크게 막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4대 강 사업으로 확보한 13억t 물의 활용처가 마련돼 있지 않고, 용수로 시설도 돼 있지 않아 ‘그림의 떡’이라는 주장이다. 환경운동연합 이철재 정책국장은 “4대 강 사업이 가뭄 해소를 위해 주도면밀한 검토 없이 진행됐다”며 “따라서 확보된 물을 어떻게 용수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일 ‘북한의 가뭄실태와 식량수급 전망’이란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서 연구원 측은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북한 대부분 지역에서 가뭄이 지속되고, 특히 곡창지대인 서해안은 평년 강수량의 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권태진 연구위원은 “현 상황에서 보리와 밀은 수량이 20%, 감자는 10% 감소가 예상되며 전체적으로 여름 작물의 약 15% 안팎의 감소가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권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북한이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최근 “40%의 농경지가 피해를 봤고, 강냉이가 많이 말라 죽었다. 채소와 공예작물을 비롯한 밭작물의 피해도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 발표에 의혹을 나타내는 전문가도 있다. 변희룡 교수는 “우리가 계산한 가뭄지수로 볼 때 북한 서해안 가뭄이 서산 등 한국의 중부권보다 절대 심각하지 않다.
아마 국제사회의 원조 등 다른 속셈이 있어 그렇게 발표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신동재 기자 (중앙선데이 6.24일)
변희룡(62)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1973년 공군사관학교 졸업, 기상예보관, 기상대대장, 연구부장 등을 지냈다. 1991년 서울대 대기과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기상학회장(2010~2011),한국지구과학회연합회장(2011)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일상생활의 기상』(2000),『이야기로 간추린 천기누설』(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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