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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찬송가

194장 불꽃과 같은 주 예수 [원곡 히스토리]

by 초코우유 ∽ blog 2016. 7. 15.

194장 불꽃과 같은 주 예수  Send The Fire

(William Booth 작사  Fredrick Booth-Tucker 작곡)

2014. 4. 19.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 찬송가에서 채택한 것이다. 1917년까지 '러시아정교회' 기독교가 국교였던 러시아 교회는, 제도화 · 교리화 · 귀족화 하면서 서민들과 농노(農奴)들의 고난을 외면하다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무신론 공산화되어, 온 세상이 50여년 동안 동서로 양분되어 수십 억의 인구가 서로를 죽였다.

 

공산 국가의 교회들은 말살되었고, 신앙을 지키려는 성도들은 긴 세월 동안 엄청난 핍박을 받으며 숨도 못 쉬며 지내 왔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이제 신앙의 자유를 찾은 러시아 형제들은「불같은 성령」을 사모한다. 사탄적인 잔재가 온 나라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며, 그들은 성령의 거룩한 불로써 모두 태워버리고 새 나라 건설을 하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성령의 큰불을 주소서」하고 기도하는 러시아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 한국 교회도「저들에게 성령의 불을 주소서」하고 함께 기도하자.

 

《러시아 찬송가》'Svornik Duhovnyh Presen, Moscow, 1984'에서 채택한 것이다. 영어 가사 첫줄은 'The Lord of Holy in the Heaven'.

 

 

이 해설을 쓰기 위해 러시아 찬송가를 몇 권 구입했으나 이 곡조가 들어 있는 것을 찾지 못해, 찬송가공회 간사로서 개편작업에 동참한 서울신학대학 이문승 교수가 웹사이트에 올린 해설을 아래 인용한다.

 

 

성서원에서 발간한 《한영 찬송가, 2010》194장

이 찬송가는 찬송가공회의 승인을 받고 성서원, 말씀사, 두란노, 기독교서회에서

공동으로 편집 작업을 했는데, 그 회사들이 함께 필자에게 영어와 악보 교정을 부탁하여

필자가 100일 동안 정성껏 교정을 보아 마침내 출간되었다.

 

 

작사 · 작곡자가 미상인 이 찬송은 러시아찬송으로 1984년에 모스크바에서 출판된 러시아 침례교찬송가(Sbornik Duthovnyh Pesen)에 수록된 것을 찬송가공회가 채택한 성령강림찬송이다.  

 

이 찬송의 가사는 레위기6:9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에 근거한 것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정결케 되기를 원하며,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참되게 살아가기를 원하여 성령의 큰 불을 갈망하고 주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와 같은 찬송이다. 러시아 선교를 위하여 공통점을 만들기 위한 찬송가공회의 의도 중 하나였다.

 

이 찬송의 음악은 전통적인 복음성가 풍으로 힘찬 리듬과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으로 성령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게 작곡되어 있다. 소프라노와 테너의 2중창과 같은 아름다움은 전통적인 복음찬송의 특징이기도 하다. 순차진행이 우세한 선율이지만 적절한 부분에서 힘이 넘친다. 이 찬송은 박봉배 목사가 우리말로 번역하였다.(펌)

 

 

 

 

※메일로 받은 해설 자료

 

오 소운 목사님

안녕하시지요. 수년 전 연락을 가졌었던 구세군의 장복규 원로정교(원로장로 격)입니다. 페이스북에 목사님 얼굴 뜬 것 보고 <새 정보>를 제공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실은, 그 동안에도 이런 정보를 공개해야할까 말까 하고 주저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21C 찬송가 No.194>의 작사/작곡가에 대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찬송가 해설서(성서원, 2011) 보니 러시아 찬송가(침례교 1984년)에서 떠온 것으로, 작사/작곡자 미상이라고 쓰셨더군요. 그 은혜스런 찬송가의 작사자는 놀랍게도 구세군 창립자 Wm Booth이고, 곡은 Indian Traditional Tune을 Booth의 사위인 F. Booth-Tucker 가 어래인지한 것입니다.

혹시 확인하고 싶으시면 <The Salvation Army Tune Book with Supplement,1931>No.234 (저는 12쇄 1940소지), 한국구세군의 <구세군가, 1976> No.87 을 보면 제 얘기가 틀림 없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구세군찬송가 해설서 <Companion to the Song Book of The Salvation Army. Gordon Tayler> pp. 194 & 259 을 구해보면 보다 더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그 책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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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받고 즉시 미국에 <Companion to the Song Book of The Salvation Army. Gordon Tayler>를 주문하였는데, 방금(2014. 9. 22.) 도착했다. 즉시 책 표지를 스캔하여 올린다.

 

 

<Companion to the Song Book of The Salvation Army. Gordon Tayler>

아래 203장이 구세군 찬송개 해설 전문이다

 

 

 

 

분명한 것은 <러시아 찬송가>는 구세군의 것을 번역했거나 가사 일부를 개작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그 찬송가 1절 영어원문(원본에도 4절까지 되어 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찬송가 연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혹시 기회가 있으시면 제가 이런 정보를 제공해드렸다고 소개해주시면 <보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장복규

 

Though Christ of burning, cleansing flame,

Send the fire, send the fire, send the fire!

Thy blood-bought gift today we claim,

Send the fire, send the fire, send the fire!

Look down and see this waiting host,

Give us the promised Holy Ghost;

Send the fire, send the fire, send the fire!

위의 장복규 구세군 원로정교(正校)님의 자료에 의지하여 웹서핑을 하여 많은 자료를 찾았다. 작사자는 구세군 창립자 윌리엄 부스 대장이요, 처음 실린 곳은 <구세군의 전쟁 함성>(Salvation Army's 'War Cry', 1884).    작곡자는 그의 사위인 프레데릭 부스-터커(Frederick Booth-Tucker)였다. 곡명은 TUCKER:89.89.88.89.(아래 곡조)

 

 

 

 

한국 <구세군 찬송가, 2005> 582장에 이 찬송이 있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곧 스캔하여 올린다.

 

 

 

구세군 장복규 원로 정교님이 보내신 1931년판 구세군 군가 234장 사진을 스캔하여 올린다. (아래 악보)

 

 

 

 

 

작사자 윌리엄 부스 대장

 

작사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1829년 4월10일 영국 노팅험(Nottingham)에서 태어났다. 1855년 6월, 나중 ‘구세군의 어머니’로 알려진 캐서린 멈포드(Catherine Mumford, 1829- 1890)와 결혼하여 9명의 아이를 키웠다. 그의 유년시절을 보면, 부스는 가난한 삶과 가까웠음을 볼 수 있다.

 

 

 

<구세군의 어머니> 캐서린 멈포드

 

그는 14세에 아버지를 잃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전당포에서 일했으며, 그는 전당포의 거래를 싫어했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6년간의 도제 실습을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당포업자로서의 일상은 그가 매일 보는 가난과 고통에 대한 깊은 증오로 마음에 남게 되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충동적인 십대였던 윌리엄은 15세에 크리스천이 되어 노팅험의 감리교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국 도시빈민들을 돕고자하는 열정은 그의 삶 내내 그를 이끄는 강한 원동력이었다. 비록 10대였지만, 선교에 대한 부스의 재능은 확실했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그는 가난한 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러 다녔다.

 

후에 부스는 복음전도자로서 다양한 종파들과 일하였으나, 그가 평생의 목표를 발견한 것은 바로 런던의 빈민 거리에서 하는 설교를 통해서였으며 ‘빈민의 거리’ 바로 그곳이 구세군이 시작된 곳이었다. 그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사람의 야망은 문예에 있고

어느 사람의 야망은 지식에 있으며

어느 사람의 야망은 재물에 있으나

나의 야망은 영혼구원에 있다."

“여인들이, 지금처럼 울고 있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아이들이, 지금처럼 굶고 있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사나이들이 지금처럼 감옥을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불쌍한 소녀가 거리에 버려져 헤매는 동안 어둠의 자식이 하나라도 하나님의 밝은 빛에서 벗어나 그대로 있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싸우리라! 마지막까지!"

그는 그리스도인이 빵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아내 캐서린과 함께 1865년 이스트 런던의 빈민굴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널리 전파하였다.

 

이 운동은 1878년 구세군(Salvation Army)라 이름으로 발전하였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세계 56개국에 퍼졌다.

저서로 《암흑의 영국과 그 나아갈 길》등이 있다.

 

이 찬송은 <구세군의 전투함성, 1884>(Salvation Army's War Cry)1 4월호에 실린 시에 그의 사위 부스-턱커(Frederick Booth-Tucker)가 곡을 붙인 것이다.

 

 

<구세군의 전투함성, 1884>(Salvation Army's War Cry) 신문

 

작곡자 프레데릭 부스 터커

작곡자 프레데릭 부스-터커(Frederick Booth-Tucker, 1853-1929) 는 인도 공무원 부국장 윌리엄 T. 터커(William T. Tucker)의 아들로 인도에서 태어났다.

1875년 첼튼햄대학(Cheltenham College)에서 공부하고, 1875년에 런던에 있는 무디-생키 전도 집회에서 예수를 영접하였다. 1881년 영국에서 구세군에 가입하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 그는 인도인 민원실에서 근무하다가 영국을 떠나 인도로 가서 구세군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터커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그의 전도의 주요 장애물로 보고 인도의 육천만 부랑자들에게 전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구세군 유니폼을 벗고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프란 가운으로 바꿔 입고(위 사진 참조) 열심히 전도했다. 그리하여 1882년에는 인도의 성자 선다 싱을 닮았다 하여 '고행자 싱'이란 별명으로 알려졌다.

 

그의 첫번째 아내 루이자 메리가 봄베이에서 죽자, 1887년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둘째 딸 엠마 부스(Emma Booth)와 재혼하며 이름에 부스(Booth)를 첨가하여 부스-터커로 고쳤다.2

 

그는 1891년까지 인도에서 사역을 하였다. 1896-1904년 그는 미국 영토사령관이 되어 미국으로 갔는데, 1903년 사랑하는 아내 엠마가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1904년부터 7년까지 그는 외무부 장관으로 런던에서 근무하고, 1907년부터 19년 은퇴할 때까지 인도와 세일론의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각지를 시찰 여행하였다.

 

1906년 그는 봄베이 주지사의 딸 미니 리드 대령(Colonel Minnie Reid)과 결혼하였다. 그들 부부는 함께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총독은 그에게 1등급 카이저 메달(Kaiser-I-Hind medal (first class)을 수여했다.

 

그는 수많은 시와 노래를 쓰고, 〈미국 구세군의 애창 찬송가 100곡 모음, 1899〉을 미국에서 출판하였다. 1893년 그는 월간《구세군 사관》잡지의 편집장이 되었고「캐서린 부스의 생애, 1892」,《구세군의 인도와 세일론 사역 40년》등 그 밖에도 많은 책들을 저술하였다.

 

구세군 미국 홈페이지에서 옛날 남아프리카에서 노방존도하던 단원들의 기념사진을 찾아 여기 올린다. 구세군의 틱징은 <노방전도안단>과 <자선 냄비>다.

 

 

 

 

 

  1. The first edition of The War Cry was printed on December 27, 1879 in London, England. In 1880, US Salvation Army Commissioner George Scott Railton published the Salvation News, a small newsletter. He published the first US edition of The War Cry in January 1881 in St. Louis, Missouri. Between 1920 and 1970, each U.S. territory published its own individual version of The War Cry. In 1970, the Salvation Army's US National Headquarters started publishing a nationwide version of The War Cry. [본문으로]
  2. Emma Moss Booth (8 January 1860 – 28 October 1903) known as 'The Consul', was the fourth child and second daughter of Catherine and William Booth, the Founder of The Salvation Army. [본문으로]
출처 : 맹꽁이의 찬양
글쓴이 : 맹꽁이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