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한사람이 죽었는데 추모객이 4천명이 넘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충혼당 106호실에 들어가면 왼쪽 맨 아래 칸에 한 육군대위의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름 안수현. 1972년 1월 17일~2006년 1월 5일. 고려대학교 의과대(91학번)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내과전문의로 일했던 안수현은 2003년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복무하던 중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되어 2006년 1월, 33살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영정사진이 걸리기 전부터 장례식장은 물밀듯 밀려오는 조문객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습니다.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앞을 다투어 그의 빈소를 찾아 왔습니다. 그의 빈소를 찾은 사람들은 학교, 병원, 교회의 지인(知人)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근무했던 병원의 청소부, 식당 아줌마, 침대 미는 도우미, 매점 앞에서 구두 닦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생전의 청년의사 안수현이 베푼 사랑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구두 닦는 분은 자신에게 항상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는 의사는 그 청년이 평생에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청년의사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신념으로 홀로 병원을 지켰던 사람, 의사를 만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환자의 얼굴로 자신을 찾아오신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 한밤중 자신이 치료하는 환자의 병실을 찾아가 잠든 환자의 머리맡에 서서 환자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 환자들에게 성경책과 찬양 테잎을 선물하며 전도했던 사람, 하나님을 믿어도 제 몫부터 챙기는 영악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바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환자를 사랑했던 사람, 안수현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서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지니고 살기를 원해서 자신의 필명(ID)을 스티그마(Stigma, 흔적)라고 지었던 안수현은 자신의 소원대로 많은 사람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해부학 책을 보면 우리 배 속에 흔적만 남아 있고 피는 흐르지 않는 혈관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 배꼽에서부터 이어져있는 이 혈관은 한글로 굳이 표현하자면 ‘배꼽동맥(umbilical artery)’의 흔적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모두 탯줄을 달고 나온다.
엄마 배 속의 아기에게 탯줄은 유일한 생명선이다. 탯줄 안에 혈관이 있고 이 혈관을 통해 아기는 엄마로부터 필요한 영양과 모든 물질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혈관은 잘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탯줄은 끊어지고, 피가 흐르지 않는 이 혈관은 차츰 퇴화되어 마침내 흔적만 남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의학적으로 혈관(vessel)에 비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더 많이 나누고 베풀수록 그 ‘혈관’ -그리스도인-을 통해 더 많은 피가 흘러, 혈관은 더 튼튼해지고 커져서 더 많은 생명의 피를 흐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통해 흐르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면, 그 혈관은 퇴화되고 더 이상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안수현 지음 ‘그 청년 바보의사’ 중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생명의 피가 콸콸 힘 있게 흐르는 살아있는 동맥 같은 신앙의 소유자가 되지 못하고 퇴화해버린 배꼽동맥처럼 신앙인의 딱지만 간신히 붙어있을 뿐 삶속에 예배, 기도, 주님 위한 수고와 헌신, 전도가 끊어진 채 무늬만 신앙인인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젊은 의사의 불꽃같은 짧은 삶이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합니다. 퇴화해버린 배꼽동맥입니까? <나는 책상 앞에 ‘CORAM DEO’라는 문구를 붙였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이 말을 읽을 때마다 옷깃을 여민다. 경외는 우리를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는 건강한 두려움이다. -안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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