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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story

양화진에 묻힌 15명의 구세군 선교사와 가족들

by 초코우유 ∽ blog 2023. 1. 28.

양화진에 묻힌 15명의 구세군 선교사와 가족들

2004-04-15

양화진 선교사 시리즈 - 신호철 장로 
양화진선교회장(서교동교회 시무장로)

양화진 외국인묘지에는 구세군(救世軍, Salvation Army) 선교사로 내한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위하여 헌신한 선교사와 그 가족이 모두 15명에 달한다. 이들은 영국 출신이 11명으로 가장 많고, 스웨덴 출신 3명과 호주 출신 1명이 포함되어 있다. 양화진묘지에 구세군 묘역은 따로 없으나 주로 제2묘역 서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면 첫째, 남자 사관으로 헌신한 토프트 사령관을 비롯하여, 리처드 서기장관과 에이커홈 지방관 등 세분이 있다.
둘째, 여성 선교사관으로 1912년 구세군의 최초 순직자 프릭(Sofia Frick)을 비롯하여, 1913년 별세한 콜러(Magda Kohler), 1922년 별세한 힐(Florence Hill), 1934년 별세한 홉스(Pugh Hobbs), 1956년 별세한 위도슨(Mary Widdoson) 선교사 등 다섯 분이다.
셋째, 선교사 가족으로 두 살과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한 서기장관 실베스터의 두 아들(Douglas, Goldon)을 비롯하여, 제3대 사관학교장 아들 힐(Wilfred O. Hill)과, 제2대 한국사령관 프랜치의 아들 링콘(Lincoln French)은 어학선생으로 봉사했고, 영동지방관 스미스의 딸 도린(Dolleen Smith), 재무서기관 폭스의 아들 노먼(Norman Fox), 사관학교장 본윅의 딸 캐티(Cathie Bonwick) 등 일곱 명이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 제임스 토프트 - 제5대 사령관 
(Toft, James 杜永瑞, 1865-1928)


영국 웰링톤 출신으로 1865년 7월 4일 출생하여 1884년에 사관으로 임명되어, 1890년 스웨덴 출신 힐다랄손(Hildaralson) 정위와 결혼하였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등에서 봉직하고, 인도 북부 사령관에서 1926년 8월 16일 한국 구세군 제5대 사령관(參將)으로 내한하였다. 정동사관학교, 대구군영, 해주군영 신축 등 많은 사업을 확장하였다.
1926년 11월 뿌드(Bramwell Booth) 대장이 방한하였을 때, 한국 사관 대우에 대한 불평으로 '선교사관 배척사건'이 발생하여 20여명의 사관들이 면직되었다. 이 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며 구세군의 명예를 손상시킨 충격으로 병을 얻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치료 중 1928년 6월 15일 별세하였다. 양화진 제2묘역 나-27자리에 안장되고 묘비에는 "He is with Christ"라 기록되었다.

◇ 윌리엄 J. 리처드 - 서기장관 
(Ricnards, Williams J., 李道植 1878-1920)


1878년 영국 런던 윌담스토우 출신 존 리처드 부장(副將)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만국사관학교를 졸업, 덴마크에서 7년간 선교사관으로 봉직하였다. 1909년 킬로(Mary K.)부관과 결혼, 만국 본영의 문학부와 1915년 인도네시아 지방장관으로 봉직하였다.
1918년 6월 2일 42세 때 한국 구세군 서기장관으로 내한하여 구세군을 발전시키고 선교자금의 조달, 한국 여성 사관의 양성과 남자 육아원 개원, 구제사업 등에 힘썼다.
사령관 직무대리 중 1918년 한국구세군 개전 10주년 대회 준비의 과로와 서울 후생학원에 퍼진 천연두 치료에 전념하다가 자신도 천연두에 감염되어 1920년 2월 5일 별세하여 양화진 제2묘역 나-22 자리에 안장되었다.
"가장 즐거운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시키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부인과 네 명의 자녀는 캐나다로 출국하였으며 그의 아버지(캐나다 사령관)는 아현영문 붉은 벽돌 회관을 이도식 기념관으로 지어 헌증하였다.

◇ 에이커홈 - 지방관 
(Akerholm, Earland. 玉居欽 1888-1920)


스웨덴 출신으로 1888년 3월 13일 출생하여 1914년 3월 9일 사관(正尉)으로 내한하였다.
1916년 6월 나틸다 사관과 서울에서 결혼하였다. 개성 지방관을 거쳐, 충북의 지방관을 역임하다가 1920년 3월 15일 영동에서 장티푸스로 별세하여 영동 본영 뒷산에 안장되었다.
2000년 9월 27일 구세군순교성지기념사업회 주선으로 양화진 제2묘역 나-25자리에 이장되었다. 부인은 함남 구고산 지방관, 사관학교 교관, 자선위문단 책임관, 원산 선교사휴양관장, 서울여자관장 등을 역임하고, 1940년 12월 8일 일제에 의하여 강제 출국되었다. 사재를 출연하여 조성한 기금이 영동병원을 설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양화진에 묻힌 5명의 구세군 여성 선교사

 

◇ 위도선(1898-1956) 영국 여성 가정단 총재 

 

마리 A. 위도선(Widdowson, Mary Ann, 한국명 : 魏道善夫人)선교사는 1898년 4월 4일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하여 사관학교를 거쳐 부교가 되었다. 1926년 내한하여 위도선(魏道善)과 결혼하고 첫아들을 낳았다. 7년 간 한국에서 봉사하였으며 1934년 2월 출국하였다.
1953년 1월 29일 다시 내한하여 남편은 구세군사령관으로, 자신은 고아원원장과 가정단 총재로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다. 위암 투병 중에도 크리스마스 자선냄비를 위해서는 거리로 나와 전도지를 뿌리고 동료들을 격려했다.
1956년 5월 10일 별세하여 장례식은 남편의 집례로 양화진 제1묘역 라-12자리에 안장되었다. "한국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 프릭(1886-1912) 스웨덴 여성 사관 


J. 소피아 프릭(Frick, Jenny Sofia) 구세군 선교사는 1886년 8월 16일 스웨덴에서 출생하여, 스웨덴 사관학교를 졸업(1911)하고, 독신으로 1911년 12월 24일 내한했다.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서울에서 한국말을 4개월간 공부한 뒤, 쪽 복음과 '구세신문'을 나누어주며 문서전도와 노방전도에 힘썼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한시간 정도 기도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다.
급성 뇌염으로 1912년 4월 29일 구세군 한국 선교사로서 최초로 순직했다. 장례식은 호가드(R. Hoggard, 許嘉斗) 사령관이 집례하였으며 양화진(제1묘역 나-11)에 안장되었다.

◇ 콜러(1886-1913) 스웨덴 여성사관 


마그다 콜러(Kohler, Magda 한국명 : 高月羅) 선교사는 1911년 스웨덴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선교사로 선임되었다.
1911년 12월 24일 독신으로 내한하여 호가드 사령관 비서로 일했다. 구령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열성이 대단하여 한국말을 배운 뒤, 시골로 다니면서 많은 한국인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경북 의성(원당)에서 순회 전도를 마치고 자원하여 담임사관으로 헌신했다. 그를 아는 한국인들은 '고월라'라는 이름을 따서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본이 되었다. 얼마나 그가 열정적인 봉사와 사랑으로 감화를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장티푸스 환자를 돕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동산병원에서 1913년 5월 23일 순직하여 대구에 묻혔다.
"예수를 위한 고난을 감수할 것과 예수의 십자가를 나누기를 원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기 원한다"고 하였다. 묘지의 소재를 모르다가 '구세군순교성지기념사업'으로 2000년 9월 27일 대구(동산병원)에서 양화진 제2묘역 다-24 자리로 이장했다.

◇ 힐(1891-1922) 영국 여성 사관 


R. 플로렌스 힐(Hill, Riley Florence, 한국명 : 許日夫人) 구세군 선교사는 1909년 1월 10일 내한하여 호가드 사령관 비서로 일했다. 충청지방관으로 임명되고 후에 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한 구세군사관(許日)과 결혼했다. 힐 부인은 여성사관 교육을 1917년 10월 처음 시행한 선교사이다.
이들 부부는 충청지방관으로서 개척사업과 선교 봉사 및 육영사업 발전에 기여했다. 1922년 1월 5일 39세로 평동사관학교 사택에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신태빈(Stevens) 사령관 집례로 양화진 제2묘역 나-26자리에 안장되었다. 묘비에 "東出十三年餘之生命爲 朝鮮民族獻身日日歡迎"이라 기록되었다.

◇ 홉스(1880-1934) 영국 여성 선교사 


엘렌 P. 홉스(Hobbs, Beatrice Ellen Pugh, 한국명 : 許燁夫人) 선교사는 1880년 8월 24일 영국에서 출생하였으며 구세군 간호 선교사가 되었다. 토마스 홉스와 결혼하여 1910년 9월 16일 남편과 함께 내한했다. 여자절제회, 동물학대방지협회 활동과 진명여학교 교사 등으로 문맹퇴치와 사회계몽 활동에 힘썼다.
1934년 4월 8일 서울에서 별세했다. 남편(Thomas)은 영국 만국사관학교를 졸업, 구세군 한국 본영과 개성지방관으로 전임되었다. 원당 사평 장단 등 지방 군영을 개설, 순회 전도하였으며 1913년 1월 구세군을 탈퇴하여 성서공회 총무 등으로 성서 보급 사업을 하다가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다.

 

출처: 양화진 선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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