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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story

구세군의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in the Salvation Army)

by 초코우유 ∽ blog 2011. 5. 26.

구세군의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in the Salvation Army)

 

강봉구

 

1. 서론
요한복음 3장 16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 중 자신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전(全) 인류에게 선물로 수여하고자 목적하신 것,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까지 인간들에게 부여받게 하고자 하셨던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은, 육체적 죽음 이후의 삶에 주시려하는 내세(來世)적 구원과 더불어,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얻게 된 영적 죽음 이후의 삶-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에 주시려 하는 현세(現世)적 삶의 구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군의 사회적 성결은 이 현세적 삶의 구원의 개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볼 것은, 현세와 내세의 구분에는 시간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내세의 삶과 현세의 삶이 구분되어있지 않으며, 온전한 삶이란 현세와 내세, 영과 육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결의 교사’ 브렝글(S. L. Brengle)은 “그리스도화(Christ-likeness) 하는 체험이 곧 성결이다. 정결한 마음의 은혜요, 구세군식 용어로 말해서 ‘온전한 성결(Entire Sanctification)’이요, 성령의 내재요, 신앙의 확인·극복하는 능력이요, ‘나’에 죽는 것이요, 믿는 마음에 성령으로 역사하심이요, 신자는 이렇게 점점 ‘그리스도화’하는 것이다.”이라고 하였다. 시들로우 백스터(J. Sidlow Baxter)는 ‘성결과 성화’에서 “성결은 하나님을 닮는 것”, 혹은 더 자세하게 “성결은 하나님의 도덕적 성격을 닮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이란 “태초에 하나님께로부터 온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불순종의 죄로 인해 타락된 인간들이 모여 구성된 불완전한 사회가 창조의 본 모습으로 타락한 모습이 치료(healing)되어 회복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2. 사상적, 역사적 배경
윌리엄 부스의 사회개혁운동은 구빈적, 일시적 차원이 아니라 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의 정신적, 사회적, 환경적 수렁에서 온전히 구원(Full Salvation)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세군의 구원은 비누(Soap)와 국(Soup), 그리고 영혼구원(Salvation)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어야 했다.
윌리엄 부스는 존 웨슬리를 자신의 선지자로서 말했다. “나는 메소디스트의 이름을 지닌 모든 것을 존경한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존 웨슬리는 그의 선지자이다. 내가 필요로 한 판단 기준의 모든 것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가르침의 정신과 그의 글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존 웨슬리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이다. …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 … 빛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사랑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17, 18세기 청교도와 경건주의 전통은 생활의 성결에 초점을 두었으며, 이는 18세기 웨슬리안 운동(Wesleyan Movement)와 19세기 성결 운동(Holiness Movement)의 토대가 되었다. 구세군이 창시(1865)되던 시대는 대 성결 부흥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때였다. 대성결부흥운동(대각성운동)은 1858년 미국에서 부흥회 기도모임으로 시작되어, 캐나다와 대서양을 넘어 1859년 영국에 이르렀다 당시 영향력있는 부흥사는 찰스 피니(C. Finny)와 제임스 코히(J. Caughey)였다. 부흥운동은 영국 국교의 복음주의자로부터 감리교 신자, 회중교회 신자, 장로교 신자에 이르는 대부분의 교회에 영향을 주었고, 부흥운동은 각 교회 기도모임 운동과 연합 기도모임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부흥운동의 중심인물 가운데는 미국인 팔머 부부(W. C. Palmer and Phoebe Palmer)가 있는데 이 부부의 가르침과 부흥회, 특히 포비 팔머 여사의 성결에 관한 책들은 구세군 창립자의 영감있는 자료가 되었다. 코히 목사와 팔머 여사는 모두 미국 성결 운동의 리더들이었다.
구세군은 산업혁명(1760-1830) 이후, 사회, 정치, 경제가 불안해하였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1932-1901)에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부인 캐서린에 의해 1865년 영국 동부런던에 있는 '블라인드 베거(Blind Begger)'라는 술집 앞 노상에서 가로전도로 시작하였다.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는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으나, 그 혜택이 동부런던에 미치지 못했고 그 밑바닥에는 빈궁, 질병, 부도덕과 고통이 깔려 있었다. 주민들은 이 같은 불행에 대하여 체념적이었고, 더욱이 교회는 가난한 자들이 교회를 찾아와서 호소하는 빈곤에 대해서 무관심하였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가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교회 문턱이 높아서 교회가 그들을 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소디스트 교회가 1739년에 창시되어 사회봉사에 큰 공헌을 하였으나 1세기 후에는 감리교도 역시 영국교회와 같이 타성에 빠져 결국 가난한 사람과 중산계급 사이에 장벽이 있었다. 그리하여 보다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의 정신에 입각하여 사회구원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일어난 것이 구세군이었다.

 

3. 성서적 근거
구세군은 웨슬리의 후예로서 웨슬리안주의가 주장하는 ‘온전한 성결(Entire Sanctification)’을 강조하는 단체이다. 특히 웨슬리가 말한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를 강조한다. 웨슬리는 당시의 노예문제, 감옥의 상태, 그리고 가진 자들의 착취행위에 대하여 항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는 메소디스트가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성화의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와 같은 웨슬리의 전통을 브렝글(S. L. Brengle)과 쿠츠(P. Coutts)가 동의하였다.
구세군에 있어서 사회적 성결의 성서적 기초는 ‘사랑’이다. 이 사랑 구약에서 두 명령으로 되었다. 첫째는 신명기6:5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였다. 둘째는 레위기19:18에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명령하였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구분되어 있는 두 명령을 하나의 “큰 계명”으로 묶어 놓았다. 마태복음 22:37-40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다.(막12:28-34, 눅10:25-28)
성결은 진실한 사랑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롬5:5) 이웃을 향한 인간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롬13:8-10)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이 변화가 바로 사회적 성결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러한 예수님의 철저한 사랑의 윤리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적 성결이다.(마5-43-48, 막12:28-31, 눅10:5-37, 요일4:7-21)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성결의 삶은 곧 치유하시며, 생명을 주시며, 사랑으로 섬기신 그리스도의 선교사역을 통해 표현되어진(마9:35) 세상을 위한 봉사(Diakonia)이다. 봉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적 사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당위적인 실천적 삶이다. 하나님은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시고, 특히 성결의 능력을 부어주시고 은사를 주시므로 성결케 된 백성의 선교적 사명을 통해서 이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킨다.
이 같은 선교의 사명은 전도와 봉사, 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세상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세상을 구원의 은총으로 인도하며, 그리스도의 긍휼로 세상을 섬기며, 사회악을 공격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마음과 삶 속에서 표현되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선교의 사명과 봉사의 실천을 실행케 하는 사회적 성결의 기초이다.
구약성서 첫 장에 인류의 역사적 방향을 단정하는 고무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은 곧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구약의 10계명 가운 데 여섯 계명이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에는 부정불의를 바르게 고치고 빈한한 자, 소외당한 자, 불우한 자를 위해주며 나그네와 과부를 돌봐주라는 주창으로 가득하다.
출애굽기20:1-17에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신 십계명(Ten commandments)이 기록되어있다. 열 가지의 계명 중 제1-3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대신(對神)계명이며 이는 개인의 성결에 관한 명령이다. 그리고 제4계명부터 마지막 제10계명까지는 대인(對人)계명으로 개인 대 개인 곧, 사회적 성결에 대한 명령이라 할 수 있다.

 

4. 창립자들

 1)윌리엄 부스
윌리엄 부스의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메시지 모음인 the Founder's Messages to Soldiers(1907-1908)에서 God's Gift, and the object of it에 보면, 요3:16의 말씀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자세를 언급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온 땅들이, 땅 위의 모든 거룩한 것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영원히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윌리엄 부스의 인간이해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고, 스스로 법을 어겼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당함으로 그 죄를 담당하였다. 그것은 단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의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론을 갖고 있다. 부스의 인간관은 구원론과 관련되어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윌리엄 부스는 부흥사와 설교자 시절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인들의 구원에 필요한 선언을 발견했다. 부스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어거스틴의 관계에서 찾지 않고 성서에서 찾았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빅토리아 시대의 부패한 상황에 적용하였다. 부스는 사고의 포인트를 죄보다는 ‘타락’에 두고 있다. 곧, 웨슬리 신학에서의 ‘타락’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인간 타락의 강조는 곧 절대 구원의 명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윌리엄 부스의 초기 신학의 중점은 신앙의 부흥운동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흥운동에 역점을 둔 신학은 두 가지 사명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과 선포였고, 이 두 가지 의미는 결국 사회적인 구원으로 연결되었다.
윌리엄 부스는 그의 저서 ‘최암흑의 영국과 그 출로’에서 “3백만 명의 방대한 절망에 빠진 대중인 남녀와 어린이들은 명목상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구제해야 할 사람들이다. … 그들 중 일부는 서부 인도의 감시자만큼이나 무자비한 사람에게 예속되고 그들 모두는 극빈과 절망 가운데 처해있다. 그들을 구제할 방법이 있을까?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하나님의 백성인 영국인 열 사람 중 한사람을 큰 한 쌍의 악마인 궁핍과 절망에 매여 있도록 팽개쳐 두는 것을 아닐까? 혹은 매여 있어도 운명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는 고민을 한다. 부스는 이 책에서 암흑기의 영국을 치유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영국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개혁운동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사회 구원이라는 한 표본을 제시함으로써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서도 그러한 환경을 개혁하고자 하는 계획을 기대했던 것이다.
 야고보서 2:15-16에서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러 평안히 자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의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 하였듯, 육체를 무시한 구원이 온전한 구원일 수 없다고 부스는 이해한 것이다.
윌리엄 부스는 선교를 하는 동안 신약교회의 전도적 사명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소외된 동부 런던 빈민들에게 무관심한 당시 교회들을 향하여 대응책을 세우기를 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선교회는 가난과 질병, 굶주림과 무지와 사회악 등으로 고통을 받고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부스는 교회가 빈민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가 아닌 가난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 공동체로서 진정한 기독교(aggressive, active Christianity)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2) 캐서린 부스
캐서린 부스는 그의 저서 “For God Alone”(1880)에서 ‘우리는 숨쉬기조차 어려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하였다. 캐서린이 세상을 떠나자(1980) 윌리엄 부스가 아내의 묘지에서 행한 설교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그녀는 사랑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에 부드러움과 깊고 측은한 마음이 가득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사랑하고 동정하며 고통 받는 가난한 자를 측은히 여겼을까요? 슬픈 자들을 그녀의 팔로 안아주고 도와주기를 얼마나 좋아했던가요?”
리처드 니버(Richard Niebuhr)가 말하는 복음 선교적 사회주의(Evangelical Socialism)에 비전을 둔 캐서린은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정신에 입각하여 강력히 주장했고, 부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구원(Salvation in the Slums)에 생애를 불살랐다.

 

5. 초기 구세군의 사회사업
 1) 빈민급식활동
1866년 이후 기독교선교회 초기 동부런던과 기타지역에서 극빈자가 1페딩씩 내고 빵, 고기, 수프, 커피 등을 살 수 있는 염가 판매소가 문을 열었다. 1867년부터 포플라(Poplar)에서 시작되었는데 매일 스프와 빵을 가난한자를 위해 나누어주는 보급소를 설치했고, 1868년에는 캠브리지 음악당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아침식사를 제공하였다. 1870년에는 대중선교회관과 화이트 채플화관에서 빈민을 위해 값싸게 음식을 공급했으며 그 후 “100만인을 위한 급식”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5개의 음식점이 열렸다. 당시 500만 명의 실업자들 가운데 약 300만 명이 혜택을 받았다.

 

 2) 노숙자 구제활동
1887년 겨울, 런던대교를 지나던 부스는 돌난간 곁에서 추운 밤을 지새우는 노숙자를 목격하곤 했다. 그리하여 1888년 서인도 부두에서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70-80명을 수용하여 식사와 숙박소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국밥을 나누어주는 급식소였다. 그 후 클라큰웰과 리손가에 급식소를 열었고, 화이트 채플가 272번지에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소를 열게 되었으며, 이와 유사한 사회봉사를 위해 본부까지 두게 되었다. 이 숙박시설들은 칸막이가 없이 터져있는 커다란 방에서 수백 명의 노숙자들이 빈틈없이 서로 몸을 부비면서라도 잘 수 있는 공간을 주기위한 것이다. 또한 폐품을 수집하여 재생키시는 공장역할을 하면서 저렴한 숙박소를 운영하였다.
1890년 스웨덴 괴테보르크에 야간숙박소를 설치, 프랑스 파리에 임시숙박소를 두어 추운 겨울 밤 수백 명의 노숙자들을 재웠다. 1891년에는 그린위치에 “싼 값으로 잘 수 있는 숙박소”를 두었고, 동시에 여성들을 위한 숙박소를, 몬트리올에는 “조 비프”라는 술집 건물을 사서 “등대”라는 남자 숙박소를 시작했다. 또한 독신이건 기혼자건 집 없이 방황하는 여성들을 위한 무료 숙박소를 두어 숙박의 편의를 보아주었으며, 식사도 싼 값에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활동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1898년에는 이와 유사한 숙박시설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케이프타운, 멜본, 시드니 등에 설치되었다.

 

 3) 실업자 구제활동
부스는 노동시장에서 일을 구하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할 일을 제공해주려고 노력하였다. 숙박소에 직장을 만들어 ‘향상하는 자(Elevators)’라 이름하고, 떨어진 옷이나 종이 고르기, 폐품수집, 목공, 간판 쓰기, 바구니 만들기, 장작패기 등의 작업을 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 800여 명이 이런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1891년 올드포드에 실업자의 자활을 위한 성냥공장을 운영하였으나 실업자 수에 비해 작업시설의 규모가 너무 작았고, 노동자들 역시 작업에 숙련되지 못하여 수용능력이나 생산량과 질에 한계가 있었으나, 이마저 1901년 성냥공장 재료인 인이 인체에 해롭다는 여론에 밀려 문을 닫았다. 노동교환이 자유로이 실시되기까지 각 지방에 노동청을 두어 고용주들이 여기서 일손을 찾았고, 또 무직자들은 여기서 일을 얻었다.
농업거류지(Farm Colony) 사업은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사업의 일환으로서, 충분한 농지를 확보한 다음 목축이나 농작물을 경작하여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었다. 에섹스 헤들레이에서는 300에이커의 농토를 확보하였고, 따라서 수백 명의 일손이 필요했던 것인데 노동자들의 실습소를 복스테드에 두어 구인농장주와 상담하여 실직자를 구제하였다.

 

 4) 요보호 여성 구제활동
윤락여성과 미혼모사업은 1881년 화이트채플가의 한 구세군 여성병사 코트릴 부인이 개인으로 가로에서 윤락녀를 구제하려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윌리엄 부스의 집회에 많은 윤락여성들이 참석하여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 장면을 보고 집으로 데리고 와 숙식을 해결해주고 가정의 따뜻한 분위기를 맛보게 했다.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이 사업은 급속히 발전되어 1884년 핸드베리 가에 가옥을 구입하여 ‘구세군 피난소’라 하고 코트릴 부인의 집에 있던 여성들을 옮기게 되었다.
윌리엄 부스는 요보호 여성인 윤락여성이나 미혼모들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것 뿐 아니라 여성의 인권보장, 윤락행위의 예방과 방지를 위해 활동하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여성이 13세만 되면 법적으로 윤락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부스는 이것의 부당성을 여론화시키고 34,300명의 서명을 받아 윤락여성 취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도록 함으로써 그 연령을 16세로 상향시켜 놓았다. 이후 런던에는 ‘구세군 불우 소녀 상담소’가 개설되었고 소녀 복지시설이 증설되었다.
1886년 구제사업 상담소가 개설되었고, 2년간 4개 여성구제시설이 런던에 개설되었다. 1889년 런던에 모자시설이 개설되었고, 부인구제사업 역시 다른 나라의 여론을 움직여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5) 일탈자 구제활동
알코올 중독자는 상류계층의 사람들보다는 가난한 하류계층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1890년 영국내 알코올 중독자는 약 50만 명이었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일찍부터 ‘음주자 감화원’을 설립하였다. 가장 효력 있는 치료방법은 모든 유혹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거기서 치료적, 도덕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인하여 범죄율이 증가추세에 있었다. 1889년 수감된 죄수가 174,779명이었으며 연간 5,000명씩 증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갱생 보호 사업을 시행하였다.

 

 6) 모금활동
윌리엄 부스는 1890년 10월 20일 저서 “최암흑의 영국과 그 출로(In the Darkest England and the Way Out)” 출판을 통하여 영국의 극심한 가난을 없애기 위해 10만 파운드가 필요함을 말하고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구세군’의 사업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자선냄비 운동’일 것이다. 이것은 재난과 빈곤에서 고통 받는 민중을 돕는 사업의 일환으로 연말 성탄절 즈음에 실시하는 사업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891년 12월 추운 겨울에 항구에 배 한 척이 파선되었고, 이 배의 선원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 받는 것을 본 조셉 맥피 여사관이 거리로 나가 삼각대에 수프 냄비를 걸어놓고 “이 냄비가 계속 끓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는 외침으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7) 응급구조 활동
1866년 구세군은 창립된 지 1년 후부터 동부런던의 실업과 전염병을 구제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홍수, 기근, 화재, 전염병, 전쟁, 폭발사고 등 재해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구호활동을 펼쳤다.

 

6. 결론
구세군 교리는 순전히 복음 전도 신학적 의미에서 죄로부터 개인적인 구원(personal salvation from sin)과 악으로부터 사회구원(social salvation from evil)을 위한 사회정의와 섬김을 강조한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온전한 성결(wholly sanctified) 생활을 강조하여 총체주의 신학(Holistic Theology)을 지향하고 있다.
웨슬리의 성결운동이 개인적 성결을 중요시한 만큼 사회적 성결운동의 중요함을 보여주었듯, 구세군의 성결운동은 “총체적 복음(Whole Gospel)”에 의한 개인의 온전한 성화를 중요시하는 만큼 전인(Wholeness) 구원을 위한 통합적 선교(Integrated Mission)를 통한 사회적 구원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구세군의 성결을 구세군의 두 가지 사업인 구령사업에서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를 강조하고 사회복지사업에서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를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성결의 이중 구조는 이중성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에 대한 두 가지 표현 방법이다. 그것은 구세군 사역의 특성이 구령사역과 사회봉사사역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샴쌍둥이(Siames twins)’현상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총체적 성결(Integrated Holiness)”이라고 한다. 김준철은 ‘구세군의 입장에서 본 성결’에서 “오직 사회적 성결은 성령세례에 의한 개인적 성결의 체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구세군은 성결한 삶과 성령의 세례를 동시적으로 강조한다.”고 말한다.
성결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제의 삶속에 체험되어지는 것이다. 구세군의 영성은 행동하는 영성(Active Spirituality)이다. 어려움에 빠진 이를 돕고, 지나는 길에 떨어진 휴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로잡는 것, 이론이 아닌 실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Word and Deed)이다.

 


<부록> 구세군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더불어 공산당 선언을 확립한 경제학자인 프레더릭 엥겔스(Frederick Engels)는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의 영문판(1892) 서론에서 당시의 초기 구세군이 1)초대교회의 전도활동을 부활시켜 2)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을 호소하고, 3)종교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대항하며, 4)초대 기독교 계급의 저항 주의적 성격의 공동체를 육성하려고 한다. 라고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언급했다. 그러나 프레드릭 쿠츠(Frederick Coutts, 1963-1969)대장은 엥겔스의 구세군에 대한 종교적이며 사회과학적인 분석에 대하여 첫째 내용은 옳은 표현이고, 둘째 내용은 반쯤 옳은 표현이며, 셋째와 넷째 내용은 전혀 틀린 내용이라고 비판하고 구세군의 입장을 바로잡아 주었다. 사실 윌리엄 부스는 당시 노동자 운동인 인민 헌장 운동(the Charter)에 서명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부스는 노팅햄 웨슬리 예배당(Nottingham Wesleyan Chapel)에서 개심한 후 강렬한 느낌을 체험한 후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되었다. 부스가 1908년 4월 스테드(W. T. Stead)와 사회주의(Socialism)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할 때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구세 사회주의자(Salvation Socialist)로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구세 사회주의자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Fabian Socialist)와는 다른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지요.”라고 한 내용이 매일 신문(The Daily Chronicle)에 기재되었다. 당시 역사가들은 부스가 이끄는 구세군이 사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부스 스스로 경제주의자나, 사회학자라고 주장한 적은 없고, 처음부터 나중까지 복음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오직 영혼 구원(full salvation)을 위해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전통적인 교회의 기능을 갱신해 진지하게 영혼에 대한 관심(concern for the souls of the people)을 다시 찾게 하려는 영적 개혁운동을 벌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보편적 교회의 복음 선교 기능을 넘어서 요즘에 재발견된 선교의 개념인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되어 갔다. 윌리엄 부스는 화육의 복음전도를 위한 사회사업(Evangelical Social Work) 즉 세상 속에서 죄악과 빈곤과 나태로 인한 잃은 양을 찾아 권하고, 그들이 세상 속에서 처해있는 육체적, 물질적 난관을 극복케 하여 인간화 시켜 영혼을 구원시키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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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정보: 강봉구, 구세군의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in the Salvation Army), (과천: 구세군사관학교, 2011)

 

2011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