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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는 본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by 초코우유 ∽ blog 2013. 12. 27.

https://www.facebook.com/jaekyung.kim.585/posts/480114272109258


세계적인 초거대 다국적 석유기업 ExxonMobil(Exxon Valdez호의 기름 유츌사건으로 환경경제학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담당했던 그 회사)로 부터 신년선물로 다이어리를 받았다. 초짜 석유정책 전문가에게도 이런 황송한 선물을 보내주시다니...라며 잠시 감동을 받을 찰라. 교회 서가에서 잠시 봤던 책 "록 펠러"가 떠올랐다. 아마 석유산업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절대 "록 펠러"라는 인물, 대한민국 개신교회 목사님들이 가장 칭송하는 그래서 예배시간이든 어디든 자주 인용되어 천주교 성인급으로 시성내지는 추존된 그 인물과 알래스카 아름다운 해안가에 기름 쏟아내서 더럽히고 천문학적인 배상금 소송에서 소위 CVM이라는 새로운 가치평가기법을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한 바 있는 이 초거대 다국적 기업을 함께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석유산업 태동기...다수의 영세 석유 생산업자(탐사 및 시추담당)들과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석유정제 및 유통부문의 부재를 간파하고 이 영역에 독보적인 초거대기업 "Standard Oil"을 설립, 막대한 부를 거머줘고 초거부가 되었던 사람...이후 자산사업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무엇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십일조도 열심히 하고 교회목사님들을 잘 섬겼던 훌륭한 신앙인...그래서 종종 경건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으로서의 성공사례로 예배시간에 자주 거론되는 인물. 그 사람이 바로 "록 펠러". 하지만 신앙서적에서의 "록 펠러와 석유산업사에서의 "록 펠러"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Standard Oil"이 석유유통 및 정제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사실 공정한 경쟁 하에서 경영혁신에 의한 가격경쟁력이나 기술혁신에 의한 품질경쟁력으로 사업적 성공의 결과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혹이 아니었다. 독점적 지위를 갖는 것 자체가 사업의 목적이었으며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공정행위들과 부당행위들을 일삼았다. 사실 그가 자행한 불공정/부당행위들은 대부분 경제학 교과서에 실린 고전적 수법들이며, 현재는 이 모든 행위들이 대표적인 공정거래를 해치는 불법적 행위로서 처벌받고 있다(사실 록 펠러는 너무 대놓고 해서 지금 기업들은 이미지 상 그정도의 불공정행위는 꿈도 못 꾼다). 혹자는 당시에는 이런 공정거래의 개념 조차 없었다고 그를 두둔하기도 하지만...거칠게 말하자면 그는 새로운 형태의 범죄를 창안한 시대를 앞서간 지능적인 범죄인이며, 더욱 그가 신앙인이라면 그의 행위들이 현행법이아닌 신앙적 양심의 잣대로 판단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그가 석유산업을 독점화하면서 사실 많은 피해자들이 속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미시경제학을 학부생들에게 가르치며 독점의 폐해를 교과서적으로 설명하면서 독점은 사회 전체적인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함께 소득배분 상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문제가 있다고 역설한 적이 있었다. 사실 독점기업을 소유한 소수(또는 심지어 록 펠러 처럼 1명)가 다수의 소비자들의 이익을 빼앗아 누리는 것이 독점이윤이라는 것이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이며, 이것이 독점을 사회적으로 규제해 심지어 국유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라는 것이다. 대학강단에서 학부생들에게 가르쳤던 이 논리를 빌리자면 "록 펠러"가 이룩한 부(하도 많은 돈을 벌어 부라고 부르는 것 조차 민망하지만)는 사실 상당부분이 경쟁자들과, 상대적으로 힘없는 당시 석유생산자들과 소비자들, 다시말해 당시의 약자들로부터 강탈하여 축적한 '더러운 부'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많은 자선활동을 했든 십일조를 했든 그의 이러한 "더러운 부"가 정당화되어 "깨끗한 부" 곧 소위 "청부"가 될 수는 없다. 과연 결과가 과정을 정당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그곳이 교회일까? 어찌되었든 결국 1911년 반독점규제법에 따라 록 펠러의 제국은 강제 해체되어 30여개의 기업으로 조각났고, 그 조각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조각들 중 일부가 하나가되어 형성된 기업이 바로 "ExxonMobil"이다. 물론 Exxon+Mobil도 역시 자신들의 죄된 모태로 유전받은 죄된 본성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나쁜 짓들을 해왔고...지금까지 나와 같은 선량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강탈하는데 여전히 힘쓰고 있다. 그래서 일까? 교회 서가에 보란 듯이 꼿혀있는 "록 펠러" 찬양서를 보면서 마음이 한편으로 불편한 것이...가끔 록 펠러를 찬송하는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를 칭송하는 이유는 그가 신앙인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까?" 사실 미국은 당시까지도 기독교 보다 정확하게는 개신교 국가였으며, 록 펠러만큼의 신앙심을 가진 신앙인들, 십일조 잘내고 교회목사 잘 섬기며 경건하게 살았던 신앙인들은 많았다. 그중에는 분명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공정하게 사업을 하고자 했던 수 많은 신앙인 사업가들이 있었을 것이며, 아마 그 중에 일부내지는 상당수는 록 펠러의 불공정/부당행위로 인해 사업에서 실패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교회에서 아무도 이들을 기억하거나 송축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신앙인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신앙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적으로 실패하였지만 록 펠러만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주위에 약간이지만 존재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들을 외면한다. 마치 십자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실패한 그리스도 처럼....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 중, 신앙을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든지, 꼭 록 펠러처럼 부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성공을 욕망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어쩌면 이 욕망이 "록 펠러"라는 두 얼굴의 성인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신앙인이기 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신앙인...어쩌면 "사회적으로 성공한"에 방점이 찍힌체...보다 정확하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정 상 무슨 문제가 있든지 결과적으로 성공한" 그런 성인말이다. 현재 개신교...개신교 전체를 말하는 것은 그렇고 최소한 내가 다니는 장로교회는 공급과잉 상태다. 걸려 넘어질 정도로 목회자들이나 교역자들이 넘처나고 이들을 고용해줄 교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상당수의 목회자 후보생들은 초빙해주는 교회가 없어 개척을 하고...그래서 한 상가건물에 층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을 정도로 특히 소득수준이 높은 부자 동네 주택가 주변에는 이런 교회가 넘쳐난다. 사실 이런 공급과잉 현상의 원인은 세포 분열하든 분열되어 난립된 수백개에 이르는 교단들과 각 교단마다 소속된 한두개 이상의 신학교...그리고 이 신학교들이 등록금 장사를 위해 무절제하게 신학생을 받아들이고 무책임하게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면서 이런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 매년 이러한 신학교들의 졸업장을 들고 쏟아져 나오는 목회자들...이것이 내가 한때 목회자를 꿈꾸며 이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때 목도했던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목회자들 중 상당수는 "록 펠러" 찬양서를 읽으며 록 펠러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 "조영기"나 "오정현"등등을 올려놓고 기도하고 있다.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싶습니다." 라고... 내 딸이 이런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으며 그들의 신앙을 배울까 두렵다. 내 딸이 좌우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으로 실패한 분이셨다." 그리고 그 실패가 바로 십자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