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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

by 초코우유 ∽ blog 2013. 12. 27.

목회자의 자녀에 관한 김병삼목사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옮겨왔습니다.


김병삼

"아버지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 ."

크리스마스 저녁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노라고 들떠서 말입니다. 


아틀란타 공항에서 막 탑승을 하는데 승객이 너무 많다고 "잠깐!" 하더니 비즈니스석으로 가라고 말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보는 비즈니스석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모양입니다. 


온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데 고모가 심각하게 이야기 합니다 

"웅기야! 너 빨리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너 비즈니스 타고 왔다고 자랑했지?

만약에 사람들이 너 비즈니스 타고 왔다고 하면 '아빠'가 곤란해져. . ."

"고모 그거 공짜예요! 사람이 많아서 공짜로 업그레이드가 된건데. . ."


그래도 안된다는 겁니다. 

큰 교회 목사 아들이 비즈니스를 타고 오면 혹시라도 사람들이 뭐라고 소문을 낼지 모르기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 아들에게는 종종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 때문에 불편한 일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참 죄스럽기도 했지요. 

"왜 큰 교회 목사 자식들은 다 미국에서 공부해?"라는 비아냥 거림도 들었기에. . .


몇년이 지나 미국에서 차가 필요해 차를 살 때도 

"돈이 얼마가 있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사람들이 볼 때 어떤 차를 타야 말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샀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불편하다 생각하지 않고 살아 준 아들입니다. 


오늘 새벽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산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받은 축복이 참 많은 것이라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는 우리를 세상이 그렇게 좋게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며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비아냥 거리려고 합니다. 

불편하기는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너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곤란해 져. . ."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들이 우리를 다듬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참 많은 목사 아들과 딸들이 함께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야. 목사 자식들은 성실하든지 막되먹었든지. . ."

사람들은 참 쉽게 이야기하고, 

목사 자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불편함 혹은 얼마나 주눅이 들어 살아야 했는지도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목사였뎐 것이 너무 좋고,

내 아들이 대학을 마치면 신대원에 가겠다는 말에 너무 좋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이 

목사 아들이 신학교를 가고 목사가 되는 것이 죄인처럼 여겨지기에 

가능하면 내가 속한 교단이 아닌 다른 교단의 목사를 만들어야 하나. . .

고민도 되지만,

그래서 "너 정말 목사가 될꺼야?"라고 되 묻지만

그래도 목사가 되겠다는 아들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고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때문에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불편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일,

그런데 그 불편함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