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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서적 서평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The Man perfectly filled with the Spirit)

by 초코우유 ∽ blog 2011. 10. 20.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

 

참 인간 예수

우리의 삶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 태도, 사상을 실현해야 하고 항상 우리의 목표는 더욱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분을 닮기 원하는 것은 한갓 감상적일 뿐이요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다. 이는 기독교 신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예수를 완전히 우리와 동일시할 수 있는 방식이 있으니, 예수는 분명히 우리와 같은 인간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과 과고의 그의 생애와 현재 우리 생활에서의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같은 공통분모적인 공통점이 있는 점이다.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라는 인간의 활동 상황과 그가 전한 말,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제자들의 견문에서 예수의 면모를 엿볼 수 있고, 그에 관한 요긴한 내용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신약성서에 기록된 허다한 삶의 현상을 볼 때 거룩한 생활, 그리스도화의 생활, 성령으로 충만하고 보다 성공적이고 결실있는 생활을 좀 더 완전히 알려는 목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으로 무장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몸이 되어서 충만하게 머물러 있었다(골2:9). 하나님은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며, 동시에 믿는 자들은 누구나 이러한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과 그 성령을 받는 우리 심령은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없다.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은 각 신자들의 타고난 권리이다. 성령의 크신 은혜를 받기 원하는 신자들이나 자기의 심령에 하나님의 내재하심을 원하는 자들은 모두 큰 기대감을 가지고 과거의 마음의 문을 열어놓아야 하고, 성령 받은 자는 성령의 역사를 귀중히 여기고 자기의 손과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귀한 손님이 오실 때 과거의 심령 깊고 은밀한 곳에 즉시 영접할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원래의 인간형 예수

완전히 영으로 충만한 사람 나사렛 예수는 자기 자신의 삶이었다. 그는 남을 모방하지 않았고 참으로 그는 원래의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은근히 본능적으로, 강력한 성령을 받으면 모두 이상한 종교인의 모습으로 사람들 대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데 있다. 그러다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성자들의 성령체험은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 곧 그들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오심은 우리 본성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강조하기 위함이요, 우리 자신의 억압이 아니라 발현을 돕기 위한 것이다. 성령 받음은 하나님과 맞서 다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큼 참 인간 ‘나’일수가 없다.

 

놀라운 권위의 사람 예수

완전히 영으로 충만한 놀라운 권위의 사람 예수는 권위있는 분답게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악령을 지배하며, 그의 임재는 곧 권위있는 명령이었다. 그는 돌아온 권위의 삶이었다. 영적 권위는 성령 충만한 사람의 표식이다. 우리는 강력한 폭발적인 성령이 우리 안에서 또는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지 않으면 도저히 성결의 생활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성을 활짝 열어 놓고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받아들이므로 고통이 많은 이 세상을 위하여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해야 한다.

 

매력 있는 영의 사람 예수

완전히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요 선지자인 예수는 두려움과 존경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는 뛰어나게 인심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는 외향적이고 매력있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인간이 현실과 환경을 부정하기만하고 순전히 자기만 혼자 신령하게 살려고 한다면 그 결과로 그의 인격은 진실하지 못하고 냉혈한이 되어 무의식간에 자기는 가장 매력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완전히 성령 충만한 나사렛 예수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환경을 감사하고 자기의 인간성에 안주하면 빛나고 생동하는 인격자가 될 것이요, 예수와 같이 특별히 매력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사람 예수

예수가 장차 자신이 수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예수의 팔을 붙들고 간언하였고, 그러자 예수는 몸을 돌이켜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말한다(막8:32-33).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뿌리친 예수가 수제자의 입에서 듣게 된 것이고, 우리 주님의 반응은 즉각적 자연적인 것이었고, 그 유혹을 즉시 단호한 언어와 태도로 거절하였다. 완전히 성령 충만한 인간 예수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죄의 세력에 민감하였고 언제나 조심하고 대비하였으며 거짓된 생명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효과적 행동의 사람 예수

완전히 영으로 충만한 사람 예수는 행동가였고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언제나 분주하였다. 이 사실은 불완전한 성령체험을 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예수를 닮기 원하고 노력해야만 그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성결에 행동이 없고 성과가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호소력을 잃게 될 것이다.

 

언제나 평온한 사람 예수

예수는 매일 할 일이 많아서 분주하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요와 압력을 받았지만, 완전히 영이 충만한 사람 예수는 상당히 평온한 인격자였다. 우리가 내적 평온성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야만 한다.
 

하나님만 의지한 사람 예수: 완전히 성령 충만한 예수가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자기의 충만한 영력을 내어주는 동시에 다시 영력을 충만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진실로 예수의 일생은 균형과 조화가 있는 삶이었고 능동과 수동의 균형, 출력과 입력의 균형의 삶이었다. 그는 자기가 사용한 영력을 기도를 통하여 다시 보충함으로 언제든지 이것을 내어주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무한한 사랑의 봉사자 예수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라면 성령의 본성도 사랑일 것이다. 따라서 그 성령을 받은 우리의 체험도 사랑의 체험일 수밖에 없다. 예수의 사랑을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에 대해서 또는 구체적으로 인간매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민의 정을 발휘하는 사랑을 말한다. 또한 예수의 사랑은 무한하다.
 

급진적인 행동의 사람 예수

예수는 개성적으로 성숙한 급진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그의 제자들에 대한 기대도 과격한 것이 있거니와 그가 제자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각오도 과격한 것이었다. 누구나 성령을 받으면 왜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는 지, 왜 영적인자기 희생을 하는지 세상은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는 성령이 충만하여 그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완전히 자기를 버린 것이다.
 

오래 참은 사람 예수

완전히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는 그의 생애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선교사역에 마지막을 고하게 되었을 때, 영적 고통이 극심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물러가 기도하게 되었다. 그의 고통은 승리의 고통이었다. 그의 인내는 견실하고 승리하는 인내였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예수

누구나 뒤를 돌아보기 쉽고 자기의 사명을 포기하기 쉬운 역경에서도 예수는 목적달성을 위하여 단호히 앞으로 나갔고, 이 때문에 장차 당하게 될 비참한 운명을 잘 알면서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량이 넓은 사람 예수

“그를 막지 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막9:39-40). 오래 참고 친절하며 남을 시기하지 않았고, 그는 자랑하지 않으면 잘난 체하지 않았다. 또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디어 냈다(고전13:4-7). 그는 도량이 큰 인격자였다. 그는 마음도, 생각도, 영혼도 큰 사람이었다.
 

참으로 선한 사람 예수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눅18:19). 인간에게 선은 무엇인가? 선은 막강한 권리도 단번에 얻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가라지와 잡초를 뽑아버리면서 선과 악에 대한 식별력이 커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데서 얻게 되는 것이다.
 

철저한 극기의 사람 예수

극기는 본능과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종(controling)하는 것이다. 예수는 시종일관 자기 자신을 조종하는 사람이었으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둘러엎고 아버지의 잡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한 일(요2:14-16)은 그의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악에 대한 단호한 거부에서 오는 격렬한 분노에서 온 것이었다. 극기는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이며, 나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극기가 있을 수 없고 우리의 인격적 능동적 참여 없이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의 선한 목적을 따라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여러분 안에서 일하신다.(빌2:13)
 

평생 하나님만 알던 사람 예수

완전히 성령 충만한 예수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창을 열고 있었고, 자시를 통해 역하사니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식하였으며, 그가 말하고 행동할 때에는 의례히 영원을 배경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확실히 영적 차원이 궁극적 실체였으며 그는 그것을 가르치고 그대로 살았다.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보듯이 세상을 보았고 평생 그것을 계시하였다.
 

너무나 세상을 잘 아는 사람 예수

‘영적생활이란 단순한 정신적 수양이 아니며 환한 전등을 이리 저리 비춰가며 우리 마음속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능동적으로 여사하시는 그분에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주실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애블린 언더힐은 말한다. 성령 충만한 인간 예수의 개인적 영의 체험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그 체험의 가치관은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0). 영적 체험의 간증을 액면 그대로 믿지 말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잘 보아라. 그러면 그 말이 옳은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내적 영의 체험은 외부에 나타나는 행위로 증명된다.
 

성령의 은사 받은 사람 예수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여러 기적과 이적들을 통해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의 생애와 사역에서 나타난 성령의 능력을 보게 된다. 그의 선지자, 교사, 상담자로서의 사역을 고찰해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성령의 은사들이 그에게 작용한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혜의 선물을 나누어 주신다(고전12:11).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더욱 은사를 사용하면 할수록 그 은사는 커지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
 

균형 있는 인격자 예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예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매혹하고 남다르게 독특한 성격이 그와는 반대되는 자기의 여러 성격들을 놀라우리만치 잘 지배하고 크게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예수의 인간성을 여러 대조적인 성격들의 놀라운 평형을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자기의 대조적인 인간성을 조화 있게 결합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참으로 원만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예수는 현저하게 원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가장 서로 반대되는 성격들을 잘 맞추는 비결을 알고 있었고 여기서 그는 아름다운 결과를 성취하였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예수가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선교적 사명을 시작할 때 그는 자기의 인격과 말고 행동에 강력한 능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저절로 전달되지 않았다. 제자들이 직접 나서서 전도하기 까지는 그들은 스승으로부터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지 못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부활이 있었고 성령강림이 있었다. 부활과 오순절의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그리스도의 인격과 능력이 제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은 감염된 것이었고, 가르칠 수 없는 것들도 몸소 체득된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불완전하고 부분적이나마 예수의 완전한 성령체험을 체험한 것이었다.

 
다시 불을 붙이라

“내가 그대에게 안수할 때에 그대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금 불을 붙이라”(딤후1:6). 우리의 헌신과 믿음이 우리 마음의 뿌리와 존재에 와 닿을 때 더욱 믿음이 깊어지고 꺼지기 쉬운 우리 믿음의 불이 다시 붙어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잠깐 후에 꺼질 불이 아닌가? 그럴 지 모른다. 그런 krm 작은 불이 계속 퍼지먼 큰 불이 될 것이고, 평생 불의 역사가 될 것이다.

 

 

<서평>


  처음 책을 들었을 때,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라는 제목에 ‘혹,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의 관점에서 저술된 책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 연유에서였는지 그 어느 책보다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았고 ‘예수는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라슨 대장의 신앙고백은 ‘현대신학과 정통 기독교 신앙’이라는 흉배 혹은 방패를 가지고 책을 집어든 나로 하여금 방어구를 내려놓게 하였다.


  라슨은 성령 충만한 사람(The Man)으로서의 예수에 대해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구세군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그는 또 한권의 신학서적을 추가하려는 의도로 글을 쓴 것이 아님에 분명하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예수님의 인성’이 무엇을 말하는 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성령 충만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모델로 삼으라고 책을 기록한 것이다. 바로 ‘성령 충만’은 결코 추상적 개념일 수 없는, 삶속의 실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매주일 성결회 때마다 구세군 교리를 신앙고백으로 선포하고 있다. 마치 주기도문(The Lord of Prayer)을 암송할 때 그 의미를 깨달을 새 없이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일이 빈번하듯, 구세군 교리도 한 구절, 한 단어의 깊은 신앙 고백으로서의 의미를 곱씹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우리는... 믿는다.”를 열한 번 외치며 끝난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돌이켜보며 나의 메마른 예배를 반성하게 한다.


교리4조를 레마의 말씀으로 깨닫게 해준 ‘The Man perfectly filled with the Spirit’.

 

이 시간, 나는 하나님 앞에 다음과 같이 나의 신앙을 고백하려 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구세군의 병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합하여 있음을 믿습니다.
또한 완전히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참 인간이심을 믿습니다.”

 

 

2011년 10월 강봉구

 

John Larsson, 권성오 역, 「성령 충만한 사람 예수」, (서울: 구세군대한본영, 2001)